[사설] 정몽헌 회장의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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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어제 귀국한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회장의 행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오늘 북한으로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이번 계획은 미리 짜인 것이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실질적인 오너인 현대그룹이 수조원의 은행지원으로 연명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고, 이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경제가 휘청거리는 판에 한달씩이나 해외에 머물다 바로 북한으로 가겠다는 鄭회장의 행보는 국민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또 현대가 살아야 대북사업도 가능할터인데 鄭회장의 행보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는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공정거래법상 현대그룹의 계열주이자 실제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행보는 책임 있는 대기업의 오너로선 무책임해 보인다.

만의 하나 현대가 어제 개각으로 인해 입장이 유리해졌다고 판단, 시간끌기에 나설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현대 문제는 이미 정부 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와 믿음 없이는 백약이 무효란 사실은 이미 수차에 걸쳐 경험했다.

따라서 현대는 자구(自救)노력을 정부와의 줄다리기 또는 파워 게임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정말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현대에 남은 활로는 시장이 납득할 만한 자구노력뿐이고, 그나마 개각 등으로 시장 분위기가 다소 일신된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서둘러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야 하며 그 선봉에는 몽헌 회장을 비롯한 현대의 실질적인 오너들이 서야 한다.

현대 위기의 배경에는 유동성 부족만이 아니라 형제.가신그룹간 갈등이 한몫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다른 어떤 자구노력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새 경제팀도 현대 사태의 폭발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대는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며, 자칫 삐걱할 경우 한국 경제 전체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문제는 국가경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계열분리 등 자구노력과 상호출자.상호지급보증 해소 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개각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다. 우회하고 편법을 쓰다가 위기를 자초한 대우.기아의 교훈을 잊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어제 진념(陳稔)신임 재경부장관은 '현대 살리기가 목표' 란 뉘앙스를 풍겼다고 한다. 여기서 현대는 鄭씨 일가 등 소수의 현대가 아니라 '국민' 경제 차원에서의 현대가 돼야 한다. 또 지원도 현대 및 오너들의 각성과 자구노력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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