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 할 때까지 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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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거에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에게만 앙코르를 청해 노래를 다시 들었다. 요즘에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에게도 실력을 만회할 기회를 주기 위해 "잘 할 때까지" 를 외치며 박수를 쳐준다.

"잘 할 때까지. " 새로운 내각에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의 국정운영을 담당할 내각진용을 새로 갖췄다. 이번 개각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컸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남북화해의 물꼬는 트였지만 우리 경제는 재도약이냐, 침몰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개각을 통해 하루아침에 뭔가 달라지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이번 개각은 지난 해 5.14, 올 1.13 개각에 이은 세번째 개각이지만 정책방향에 큰 수정이 있었다기보다 개혁피로감에 지친 국민에게 국면전환용 카드를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개각이 부처간의 팀워크와 이를 통한 정책의 일관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내각교체가 꼭 필요하다면 이러한 소박한 목표를 추구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YS의 잦은 개각에 대한 DJ의 논평처럼 "빈번한 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全斗煥) 정권 이래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잦은 각료의 교체다. 노태우(盧泰愚) 정권의 잦은 개각을 비판했던 YS는 단 한명의 장관과 임기를 같이 했을 뿐이다.

심지어 임기를 6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개각을 해서 '못다한 논공행상의 끝내기' 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잦은 개각의 원인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빈번한 개각의 가장 큰 책임은 내각의 전적인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에게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치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국정분위기 쇄신용으로 개각을 활용했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서 개각을 한다는 것은 인사권자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만천하에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21개 대통령제 국가에서 내각의 불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조사한 한 연구는 의회 내에서의 정당의 분파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각국의 대통령들이 의회 내에서의 리더십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내각을 자주 교체한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개각을 해도 의회에서 대통령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내각은 또 교체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은 일단 믿을 만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했으면 전권을 위임하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다가 장관에게 정책의 실패를 물어 인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두번째 책임은 자신의 소신은 접어두고 자리에 연연하는 장관들에게 있다. 장관목숨은 파리목숨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이 대부분의 장관이 단명했음을 우리의 현대사가 증명한다.

자리에 연연해 정치권에 줄을 댄다고 해서 어차피 장수한 장관이 별로 없을 바에야 소신껏 일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그런 멋있는 장관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세번째로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양당의 부통령 후보 대상자 십여명의 프로필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각 후보자의 장단점은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볼 때는 누가 최고의 후보이고 누가 최악의 후보인지를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각을 앞둔 우리 언론의 관심사는 주로 누가 하마평이 있으며 누구의 연줄로 천거되는지에 있다. 그리고 명단을 많이 맞힌 언론사는 특종을 뽐내기도 한다.

언론인이 미아리에 거적을 펴고 전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입각명단 몇명을 맞혔는지가 도대체 왜 중요한 문제인가.

사전에 인물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을 소홀히 하던 언론이 인선이 발표된 후에야 흠집내기를 시도하는 것도 정치권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아 보기에 별로 좋지 않다.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될 때까지는 언론의 해당인물 사전 검증역할이 보다 강화돼야 할 것이다.

국정이 무능한 장관의 실험용이 돼서는 안된다. '잘 할 때까지' 믿고 맡기기 위해서는 언론의 철저한 사전 검증 작업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조기숙 <이화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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