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은행들 "좋을때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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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과 유럽 경제가 지속적인 호황세를 보이고 있으나 은행권에서는 향후 경기 침체와 치열한 경쟁에 대비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영국에 기반을 두고 주로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은 3일(현지시간) 앞으로 4년에 걸쳐 전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6천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라나 탈와 최고경영자는 "이는 은행을 현대화하고 향후 성장세에 걸맞은 수익구조를 창출하기 위한 결단" 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올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 증가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의 강력한 경쟁자인 HSBC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욱 군살을 빼야 한다" 고 덧붙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지난달 말 비용 절감을 위해 향후 1년간 중간관리자급 이상을 대상으로 전체 인원 15만여명의 7%인 1만여명을 감원키로 하고 이달 초부터 해고통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1998년 네이션스 뱅크와 합병해 미국 최대 은행이 된 BOA는 올 2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와 비슷한 20억6천만달러를 기록했지만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데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금융권 전체가 침체할 가능성이 큰 만큼 한발 앞서 비용 절감에 나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BOA는 99년에도 1만1천여명을 줄이는 등 비용절감에 주력해왔다.

세계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도 지난 6월 투자은행업무 강화를 위해 앞으로 1년6개월 안에 1천3백개 지점 중 3백개를 폐쇄하고, 소매영업부문 직원 1만9천2백명 중 1천2백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드레스드너방크, 영국의 바클레이즈뱅크 등도 최근 인원감축.지점폐쇄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유럽의 은행들이 외견상 견실한 모습인 데도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은 경기확장 과정에서 기업들이 채권을 경쟁적으로 발행하는 바람에 최근 채권 부도율이 높아지는 등 은행권을 둘러싼 여건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해 은행들의 수입원인 자산관리.증권관련 업무에 타격도 예상되는 데다 경기둔화가 본격화할 경우 은행권의 잠재적 부실채권 규모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은행들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감원도 경기가 그런 대로 괜찮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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