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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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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노동이 멈춘 시간이었다. 몸의 수고와 정신의 스트레스, 사람끼리의 경쟁이 중지됐다. 긴장을 내려놓자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잠은 감미로웠다. 노부모의 주름살은 늘었지만 손은 따뜻했다. 형제들은 유년의 추억을 얘기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조카들의 성숙이 경이로웠다. 고향 친구들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면서 정겹기만 했다.

모두 한가위 휴식을 그렇게 보냈으리라. 샛노란 보름달과 거무스름한 달무리, 소슬한 가을 바람과 멀고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는 휴식하는 이들의 마음을 한껏 풀어놓았다. 자연은 느끼는 이에게 차별 없이 은혜를 베풀었다. 지친 영혼은 달빛을 받으면서 생기를 찾았다. 헝클어진 심신은 바람을 숨 쉬면서 말갛게 정돈됐다.

일의 세계를 지배하던 이익과 목표, 효율의 원칙은 한가위 안식의 세계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이 세계는 가족과 이웃, 고향으로 이뤄진 나눔의 세계다. 거기에선 기분 좋은 낭비가 우선이었다. 일이 정지된 곳에 시간이 흘러 넘쳤다. 송편을 빚고 고스톱을 치고, 무던히 먹고 마셔대고 함께 영화 보거나 산책하는 데 낭비했다. 사실 그때 낭비한 것은 시간이 아니었다. 시간에 묻어 전달한 효심과 가족애와 정성과 인정이었다. 사람 냄새와 흙 냄새, 푸근함과 껴안음이었다. 사랑의 탕진이었다.

일의 세계에선 인색했던 미덕들이었다. 온 세상이 한꺼번에 휴식을 취하자 드러난 사람들의 마음새다. 오해가 풀리고 미움이 스러졌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고대 이래의 덕담은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귀경길은 안식에서 일의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였다. 노동은 다시 시작됐다. 몸은 수고롭고 스트레스는 세 끼 식사처럼 일상화될 것이다.

그래도 한가위 술상머리에서 오랜 벗이 농담 삼아 내놓은, 유토피아 해석법이 일의 현장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유토피아는 영영 사전에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의미의 '노 훼어(no where)'다. 그러나 w자 한 글자만 앞으로 갖다 붙이면 '나우 히어(now here)'로 변한다. 유토피아는 노 훼어가 아니고 나우 히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마음 한 조각 살짝 바꿔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보자고 대담하게 제안했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