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난 민심 겸허하게 수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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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야 의원들이 전하는 추석 민심은 제발 먹고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의원들은 연휴 기간에 지역주민에게 혼나고 욕먹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목소리로 털어놓고 있다. 지역과 중진.소장의 구별이 없다. 불황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재래시장에는 아예 가지 못한 의원도 있다고 한다. 봉변을 당할까 겁이 나서다. 실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남대문 시장에서 "소금 뿌리고 싶다"는 상인의 말을 등 뒤로 들어야 했다.

이는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국회 개원 이래 과연 의원들이 무엇을 했나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국민의 시선이 왜 이리 싸늘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이슈에만 열을 올렸다. 이러고도 민심이 성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 이전에 이어 친일 등 과거사 청산과 보안법 폐지 논쟁 등을 주도해왔다. 그러면서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분들이 득세하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3만달러를 어떻게 갈 수 있으며 또 가면 뭐하느냐"고 말했다. 분노한 추석 민심은 이 같은 인식에 대한 응답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다음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이후 예산안과 주요법안 심의 및 처리가 예정돼 있다. 국정운영의 기본계획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일정들이다. 그러나 상당수 핵심 쟁점은 민생과 경제살리기와는 거리가 먼 사안들이다. 게다가 여야는 각각 물러설 수 없다며 오기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이래서는 내년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추석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파장이 컸는지 돌아보고 경제에 득이 되지 않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행동과 발언들을 하나하나 기억해야 한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교훈을 주어야 한다. 국민의 눈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