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여름 한낮.숨이 턱턱 막히는 땡볕 아래 맨땅에서 풀썩풀썩 일어나는 흙먼지를 삼키며 그들은 싸웠다.
13일 경남 통영시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민은행과 강릉시청의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은 두 팀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할 '서바이벌 게임' 이었다.
사연은 달랐지만 절박함의 무게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
1993년과 96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국민은행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여파로 팀이 해체됐다가 올해 재창단됐다.
지난해 5월 사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전통 명문인 축구팀을 살려야 한다" 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8천여명의 직원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급여중 월 2천~3천원을 공제해 축구팀 운영기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올 1월 재창단 깃발을 올리자 흩어졌던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났던 안양 LG의 백형진.박효빈 등 프로 출신 8명도 합류했다.
이렇게 모인 선수들은 숙소도, 훈련장도 없는 환경에서도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송명원 감독은 "우승하면 숙소도 마련하고 선수도 보충할 수 있을 것" 이라며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를 밝혔다.
강릉시청은 지난해 이 대회 결승에서 호화군단 상무에 0 - 1로 분패했지만 '공포의 외인구단' 으로 신선한 감동을 남겼다.
오갈 데 없는 '축구 실업자' 들이 똘똘 뭉쳐 무서운 힘을 보여준 것이다.
강릉시장이 발령낸 '촉탁 임명사원' 의 신분으로 평균 1천3백만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는 '축구만 잘 하면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다' 는 희망이 있다.
올해만 해도 6명이 정식 직원으로 발령받아 명예롭게 축구화를 벗었다.
박문영 감독은 "오는 22일 축구팀 후원회 창립총회 단상에 우승컵을 올려놓겠다" 고 말했다.
두 팀에는 무명선수들을 끌어모아 팀 창단 57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달 실업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철도의 '축구 승리' 도 큰 자극이 됐다.
경기는 선상영이 결승골을 넣은 강릉시청의 1 - 0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승자만 있었지 패자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새로운 서바이벌 게임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