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한달] 下. 놀랜드 박사가 본 '회담이후 북한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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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스스로 변하려는 의지는 엿보이나 변화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 경협에 지나친 기대를 걸면 안된다. "

미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소(IIE.소장 프레드 버그스텐)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이 13일 은행연합회 대강당에서 본사와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이 공동주최한 '남북한 관계:현황과 전망' 세미나의 주제발표를 통해 전한 메시지다.

세미나에 참석한 본사 김정수 전문위원이 놀랜드 박사를 따로 만났다.

다음은 세미나 주제발표와 인터뷰 요지.

◇ 주제발표〓북한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려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최근 변화가 근본적 전략 수정인가 단순한 술수인가.

지난 수십년간 개혁.개방을 비판하고 1994년에 덩샤오핑(鄧小平)을 '사회주의 반역자' 라고 불렀던 북한은 지난해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5월 베이징(北京) 방문 때, '개혁' 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쓰면서 중국의 개방.개혁을 중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했다. 중대한 변화다.

다만 이 발언이 북한 안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본격적인 개혁.개방 논의가 아직 없다는 점에서 진의가 무엇인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둘째, 북한이 과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북한은 비교적 공업화돼 있다. 농업 주도의 점진적 경제개혁을 추진했던 중국.베트남보다 개혁에 따른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북한은 바로 옆에 남한이 있어 이념적 혼란이 예상되고, 정권의 특성 때문에 정책전환이 어렵다. 아들(김정일)이 아버지(김일성)의 정책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개혁의 과실을 어디에 쓸 것인가.

북한은 식량원조를 받아 생긴 경제적 여유를 무기구입과 군사훈련에 쓴다는 의혹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직 불충분하다.

▶김정수 전문위원〓북한의 권위주의가 개혁추진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놀랜드〓앞으로 5년이 지난 5년보다 정치적으로 더 불안할 것이다. 극도로 빈곤할 때는 식량확보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식량문제가 해결되면 '우리가 왜 이렇게 빈곤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놀랜드〓북한은 소규모 경제다. 또 중국.일본.한국 등이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 따라서 체제붕괴 가능성은 낮다. 주변국의 지원 속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조정을 해나가며 '꾸려나가는(muddling through)'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

▶김〓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은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놀랜드〓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늘 대비하기 위해 한국.중국.미국간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다. 3국간 군사적 협조가 없으면 만에 하나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대처하는 과정에서 중국.미국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국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미리 합의해 둘 필요가 있다.

난민대책도 중요하다. 그간 중국은 북한 난민의 정치.경제적 부담을 져왔다. 유엔을 통하든 민간그룹을 통하든 미국이나 한국이 난민대책기금을 조성해 난민수용소 설립.운영, 난민의 제3국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

▶김〓남북 경협의 바람직한 형태는.

▶놀랜드〓북한의 체제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경협이다. 금강산 사업으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보다 좀 나은 것이 광물개발.경제특구사업이다. 물론 이 경우도 북한사회와의 접촉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최선의 경협은 북한에 대한 외국인투자 자유화다. 북한 주민.군인들이 시장경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협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국제기구의 지원에 대한 기대가 큰데.

▶놀랜드〓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다. 기술적 지원 등이 국제기구 지원의 핵심이다. 베트남 등의 경험으로 추산해 보면 많아야 한해에 1억달러 정도 규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개별 국가들로부터의 지원은 어떤가.

▶놀랜드〓북한이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이다. 지난 65년 남한이 받았던 대일청구권 배상액을 그간의 물가상승.환율 등을 감안해 지금 시점에서 계산해 보면 약 2백억달러가 된다.

이 금액을 얘기했더니 일본 관료들은 깜짝 놀라 새파랗게 질리는 표정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논의되는 내용으로 미뤄볼 때 일본이 북한에 줄 수 있는 금액은 현실적으로 약 50억~80억달러가 될 것이다.

▶김〓미국은.

▶놀랜드〓11월 대통령선거가 중요하다. 공화당은 '미국이 북한에 이미 너무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는 입장이다.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이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긴다면 북한 지원은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마커스 놀랜드는 누구…]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49세)

▶미 남가주(USC)대, 일 도쿄대 초청 교수

▶199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빙연구원

▶93~94년 미 대통령 경제자문회의(CEA) 수석 이코노미스트

▶현재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

▶저서 '한반도의 경제통합' '종말의 회피:두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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