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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1호터널 ‘악몽의 4시간’… 승객 걸어서 빙판길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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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7일 오후 서울에 예상보다 많은 눈(2.6㎝, 오후 10시 현재)이 내리면서 도심 곳곳에서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 영하의 날씨로 도로가 얼어 붙으면서 차들이 미끄러지는 등 운전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 이태원 지하차도 앞 오르막길에서 운전자들이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차를 이동시키고 있다. [변선구 기자]

27일 오후 4시쯤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한남동 방면의 남산 1호 터널 입구. 시내버스 한 대가 들어섰다. 그러나 버스는 입구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꽉 막힌 차량 때문이었다. 원인은 한남동 터널 출구 쪽의 내리막길에 있었다. 갑자기 도로에 쌓인 눈발이 차가운 날씨에 얼어 붙자 차량들이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졌다. 앞선 차량이 전진하지 못하자 터널 안은 곧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서울경찰청 교통상황실 관계자는 “서울시가 내리막길에 염화칼슘을 뿌렸지만 영하 6도의 날씨 때문에 제 기능을 못했다”고 밝혔다.

버스 승객들은 터널 입구 근처에서 “지하철을 탈 테니 내려 달라”고 아우성쳤다. 안 된다는 기사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기사 A씨는 “창문을 열고라도 내리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줬다”며 “버스가 조금씩 진행한 뒤 터널 안에서 내려 걸어간 승객도 있다”고 했다.

일부 차량은 터널 출구의 내리막길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러나 한남대교 직전에서 다시 복병을 만났다. 이번엔 얼어 붙은 오르막길이었다. 역시 제설작업이 늦어지면서 도로는 헛바퀴 도는 차들로 아수라장이었고 터널 안 정체에 계속 여파를 미쳤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CCTV(폐쇄회로TV)를 통해 정체가 극심했던 오후 5~7시에 터널 입출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터널에 갇혀 참다 못한 버스 승객들이 잇따라 하차했다는 얘기다. 이날 차량들은 평소 수분, 막힐 때 수십 분이면 통과하던 터널 안에서 2시간 넘게 갇혀 있었다. 터널 안 악몽은 제설작업이 강화돼 오후 8시쯤 정체가 풀리면서 비로소 끝났다.

이날 서울에선 오후 2시쯤 북악산·인왕산 길에 이어 삼청터널 양 방향이 통제됐다. 오후 1시쯤 내리기 시작한 눈이 영하의 날씨 속에 곧바로 얼어 곳곳에 빙판길이 만들어졌다. 세종로 사거리와 강남의 주요 도로는 곳곳에서 차량이 꼼짝하지 못해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도 성산대교~잠실대교 양 방향이 2시간 넘게 걸릴 만큼 극심한 정체를 보여 시속 10㎞ 미만의 거북이 운행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오는 친구를 마중하러 인천공항에 나가던 박양일(25·대학생)씨는 “오후 4시쯤 잠실에서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운전기사가 ‘올림픽대로가 막혀 평소 2시간 걸리던 것이 4시간가량 소요될 것’이라고 말해 아예 지하철을 탔다”고 말했다.

◆기상청·서울시 서툰 대응=기상청은 이날 오전 11시 예보에서 “서울과 경기도 등은 늦은 오후나 밤 한때 산발적으로 눈이 오는 지역이 있겠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실제론 오후 1시쯤부터 기습적으로 눈이 내렸다. 적설량도 기상청의 예상(1㎝)과 달리 오후 10시 현재 서울은 2.6㎝를 기록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저기압이 빠르게 통과하면서 눈 오는 시점도 빨라졌다”고 해명했다.

예보가 빗나가면서 제설작업도 한 박자 늦었다. 서울시 제설대책안전본부는 오후 1시20분부터 인력 800명에 장비 350대를 동원해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상근무에 돌입한 것은 적설량이 1㎝를 기록하던 시점부터였다. 눈발이 그치지 않자 오후 4시30분부터 2단계 비상근무에 돌입해 인력 3473명을 투입했다.

◆거대한 주차장 된 고속도로=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충청 지역에 내린 기습 폭설 때문에 고속도로와 간선도로 역시 빙판길이 됐다. 특히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스키장 등으로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서울로 되돌아 오면서 영동·경부·서해안 고속도로의 정체가 극심했다. 영동고속도로에선 정평~둔내, 문막~강천, 이천~서창분기점 구간이 많이 밀렸다. 이날 강원도의 9개 스키장에만 3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경부고속도로는 천안~서울 구간에서 차량들이 거북이걸음을 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약한 눈이 계속 내린 홍성·평택 부근의 정체가 심했고, 서해대교를 지나는 차량들도 길게 늘어섰다. 정부는 이날 오후 8시 정운찬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폭설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등이 참석했다.

김효은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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