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상 첫 원전 수출 … 국가적 경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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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전 폭발 참사가 일어난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에 있다. 그런 우크라이나 정부가 23년 만에 다시 원전 3기를 짓는다. 원자력 발전의 경쟁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전의 발전 단가는 수력 발전의 30% 정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화력 발전의 1%가 채 안 된다. 그동안 원전이 인체나 자연에 미친 사고 빈도와 피해 규모도 석탄·석유·가스보다 훨씬 적었다.

현재 372GWe(기가와트 일렉트릭)인 전 세계 원전 설비용량이 2050년까지 최대 3.8배 늘어난다. <표 참조>

발전 비중도 22%(현재 15%)로 높아진다. 국제 핵에너지 기관(NEA)의 전망이다.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가 열리는 셈이다. 이 기관의 추산대로라면 1200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 또 원전은 부가가치도 탁월하다. 통상 25억 달러 규모의 원전 1기를 수출하면 약 10%가 이익으로 남는다.

이런 노다지 시장에서 한국이 교두보를 확보했다. 미국·프랑스 등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한 것이다. 1400㎿급 원전 4기의 설계에서 운영 지원까지 포함해 400억 달러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다.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공은 묵묵히 한 우물을 파온 우리 기술진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모처럼 그들의 땀과 눈물이 보답을 받았다. 지난 30년간 다른 나라들은 설계에서 부품까지 관련 산업 기반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 이에 비해 우리 기술진은 환경근본주의자들의 거센 비난 속에서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 원전의 가동률이 세계 평균(70%)보다 훨씬 높은 90% 이상을 기록한 것이나, 원전 건설 단가가 경쟁국보다 훨씬 낮으면서 공기는 10개월 이상 단축한 것은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건설 및 운영 능력이 이번 계약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원전 수출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기술력만 갖고는 성사되기 어렵다. 한 국가의 외교력과 국제 금융 능력까지 총체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아부다비를 방문하는 등 폭넓은 지원활동을 벌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자에게 “50년 후, 100년 후 오늘을 돌아볼 때 UAE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사격이 없었다면 이번 입찰을 접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원전 수출 원년’이 열리면서 거대 시장에 진입하는 물꼬가 터졌다. 하지만 아직 2%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국은 일부 핵심 원천기술을 여전히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2012년까지 신형 국산 원전을 개발키로 한 만큼 지금부터 기술 자립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 경쟁국에 비해 항상 미흡했던 국제 금융시장의 장기금융 조달 능력도 키워야 할 것이다. 지금은 원전 수출의 샴페인을 터뜨리기에 앞서 들메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