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긍융대란 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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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헬라의 미움을 받아 헤라클레스가 치른 열두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아우게아스 마구간 청소작업이 있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지저분한 일이 한국금융의 개혁작업이다.

*** 관치금융만 탓할 수 있나

금융노조가 오는 1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빌미는 금융지주회사 법안이다.

금융노조위원장은 총파업의 원인을 관치금융과 정격유착의 관행에 두고 관치금융 철폐법 제정을 주장하며, 단순히 인원감축 우려 때문만이 아니라고 명분을 찾으려 애썼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장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통합시에 조직과 인원의 감축이 없을 것이라고 달랬다.

금융노조가 지적한 대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발행이 오랜 기간에 걸친 정경유착, 정책금융, 내부경영ㆍ인사에 대한 정부개입 속에서 비롯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환란 이후 감독강화가 불가피한 위기상황은 인정되지만 정부소유지분이 전무한 금융기관에까지 금감원의 내부 경영간섭이 지나친 대목이 있었다.

지난해 대우그룹해체 때 채권기금조성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강제적 참여가 그러했고, 최근 10조원 규모의 채권펀드 참여도 약간의 사탕발림이 있으나 금감위의 각종 불이익 위협에 겁먹은 은행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였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전적으로 정부책임은 아니었다. 정부간섭 빙자.대마불사 믿음 등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은행경영진의 여신심사 소홀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관치금융이 유일한 금융부실원인이라면 신한.하나.한미 등 상대적 우량은행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약점 있는 경영진이 전투적 노조 앞에 떳떳이 맞설 수 없었다. 은행부실은 노사분규의 빈도 및 강도와 거의 정비례했다.

금융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금감위의 고충은 있겠지만 현정부의 고질문제인 정책혼선과 일관성 결여가 두드러졌다.

노조에 대해 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목적이 주로 전산(IT)부문 중복투자에 따른 경비절감에 있지 점포ㆍ인원감축이 아니라는 것은 정당한 답변이 아니다.

통합설이 나도는 3개 은행의 경우 점포가 30~40% 중복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원과 점포의 감축은 불가피하다. 감축노력 없이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자율화.대형화.국제화.전문화 등은 세계금융시장 흐름이며 국내 금융기관이 이러한 흐름을 타야 경쟁력 제고와 시장신뢰 회복의 결실을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모든 개혁이 결국 경영효율화와 연결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영효율화 없는 대형화는 무의미하다. 반면 대형화 없이도 경영효율화를 기할 수 있다. 미국 최우수 은행가운데 소규모 지방은행들이 다수 끼여 있다.

민간은행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게 하고, 계열사 회사들을 하나의 지주회사 체계로 얽고 전산부문을 별도의 회사로 뭉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IT회사는 동일계열 울타리 안에 둘 수도 있고 밖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 지주회사 도입 이점 많아

금융지주회사 도입문제는 이미 1997년 금융개혁위원회가 제안한 바 있다. 한국 금융산업 개편을 어렵게 하는 은행소유구조 문제와 관련해 책임경영을 위해서는 민간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산업자본의 금융독식을 우려하는 주장이 대립돼 탈출구가 안보였다.

그래서 80년대 중반에 나온 방안이 금융전업자본가였고, 여기서 진일보한 것이 금융지주회사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용이해지고, 조직의 유연성이 생기고, 자회사간의 영향을 막는 차단벽 설치로 건전성 규제가 용이하고, 위험 분산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지주회사 도입과정에서 조세감면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정부.여당은 원칙의 일관성을 고수해야 할 것이고 입법과정에서 야당의 협조가 요청된다.

금융노조가 위협하듯이 총파업을 단행해보라. 파업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은 부실은행 기피, 우량은행 선호를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결국 노조가 우려하는 은행부실 심화.인원대폭 해고가 앞당겨질 따름이다. 오늘날 전설적 헤라클레스는 없다. 보통인간의 대승적 자세와 일관성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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