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한미군 문제 놓고 달래기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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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1일 CNN방송과의 대담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매우 완곡하게 언급한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주한미군은 남북이 통일을 하든, 연방이나 연합 등 어떤 형태의 정치적 발전을 이루든 그대로 주둔한다" 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규모문제에 대한 검토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워낙 폭발성이 강한 사안이다. 코언 장관 스스로 밝혔듯이 이는 단순히 한반도의 미군주둔 문제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미국의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군 또는 감군할 경우 아시아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구가 도미노처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주한 미군은 단순히 한반도가 아닌 대 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우려 때문인 듯 미 당국은 주한미군의 철수가능성을 거듭 부인해왔다.

지난달 16일 케네스 베이컨 국방부 대변인, 3일 뒤인 19일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 24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28일 스티븐 보즈워스 주한 미대사 등이 잇따라 "주한미군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지역 안정세력으로 남을 것" 임을 이구동성으로 밝혔다.

미국의 이같은 기조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당사자 격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균형자 역할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의 만남에서도 이 부분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이 가만히 있는 한 주한 미군의 급격한 변화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결과적으론 주한 미군의 현재 지위나 규모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달 17일 제시 헬름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남북한 관계개선이 진정한 것이라면 주한 미군 철수계획을 세워야 한다" 고 주장한 것처럼 미국 내에서도 감군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의 합참보고서(본지 5월 27일자 1, 9면)는 "21세기 미국의 최대 가상적국은 중국이며 미군의 방위력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집중돼야 한다" 고 결론지었다.

미군의 아시아 주둔은 이제 아시아 각국의 필요가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란 뜻이다. 미군이 그동안 누리던 '특혜' 들이 철폐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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