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프라하의 묘지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요즘 들어 어떠한 삶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 유명한 예술가로 공인된 사람의 경우 국립묘지 같은 곳에 묻히게 되는, 그러한 묘지문화는 우리나라에 없다. 프라하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

예술가 무덤찾는 관광객들 생후 처음으로 체코의 프라하에 갔었다. 시내 구경을 시켜주는 안내자가 이건 14세기 때에, 저건 15세기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수백년간 같은 자리에 버티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었다.

그 건축물 속에서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살다 죽어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속을 드나들고 있었다.

프라하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건축물, 그 사람들은 나에게 영원히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경주를 가보지 않은 프라하 사람들에게 첨성대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객관적으로는 '있는 것' 이 분명한데 인간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없는 것' 이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끔 외국여행을 한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또 내가 항상 놀라는 것은 인구증가의 현상이다. 세계의 큰 도시면 가는 곳마다 예외없이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아! 저 많은 사람들을 모두 어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전혀 몰랐던, 나의 삶과는 정말 무관했던, 그러나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의 삶을 조건지우면서 자기 나름대로 희로애락의 질곡 속에서 집단의 역사를 창조해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아니고 천년을 넘게 살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루는 프라하에서 유명하다는 국립묘지 같은 곳을 가게 됐다. 유명한 예술가로 공인된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묻혀 있는 묘지였다. 관광의 명소였다.

외국으로부터 온 많은 관광객들로 그 묘지는 붐비고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가 유명한 작곡가라는 것을 안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묘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

나는 그들의 묘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스메타나씨여, 어릴 때부터 당신 음악을 좋아하던, 한국으로부터 온 이(李)모라고 하는 사람이오" 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만나서 친해지지 못하면 멀리서 그들의 이름이라도 거룩하게 만들고 싶다.

체코 출신의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누워 있는 묘지, 그 묘지에서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보다 차라리 더 유명하다고 하는 인사들을 그 이름조차 모르면서 내가 지금까지 왜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섰다.

묘지 안에 있는 관광객들은 대부분이 늙은 부부들이었다. 죽음에 대한 감각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 그런지 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묘지 안에 있는 늙은 관광객들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어디서엔가 묻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후세에 남는 문화 만들고파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묘지 안에 묻힌 사람과 이 묘지를 찾은 관광객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차이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나와 동행한 사람에게 '그 차이' 가 무엇일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영향력이라!" 라는 말을 외워보았다. '그 차이' 가 '영향력' 하나라고 단정짓기는 힘드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영향력이 하나의 측도가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나는 관광객이기보다 관광 대상이 되는 삶을 선택하고 싶고, 지고한 가치를 지닌, 그리고 세계인들 전부가 관광 대상물로 여기는 우리의 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묘지를 빠져나왔다.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