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내면속 나' 찾게 한 한국의 선 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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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길 알론(40)은 이스라엘의 유명한 연극.영화배우다. 여기에다 연출가.TV 사회자로서도 맹활약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특히 우리나라 그룹 '클론' 의 구준엽처럼 빡빡 민 머리의 독특한 캐릭터가 이스라엘에서도 큰 인기라고 한다.

그런 알론이 지난 15일 한국을 방문, 화계사 등 사찰에서 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유대교가 생겨난 나라인 이스라엘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선(禪)사상은 '현재' 를 중시하는 연기이론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생각을 하다보면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앞질러 가게 되죠. 그러나 선사상은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내면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끌어내 표현하려는 것이죠. "

16세부터 무대에 서 온 알론은 3년전 텔아비브의 한 대학에서 선에 대한 강좌를 듣다가 이 사상에 눈을 떴다고 한다.

"특강중 '선사상을 연기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내면을 외면화시키는 법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

오묘한 선의 세계에 심취한 끝에 금년 초 본업인 연기생활을 잠시 중단한 그는 아시아 5개국 투어에 올랐다. 지난 1월부터 인도에서 3개월, 태국에서 2개월, 일본에서 한달간 수행했다.

그는 방한후 서울.대구.청주.대전 등 7개 도시에서 극단 한강이 주관한 워크숍을 통해 자신이 터득한 '내면을 외면화 시키는' 수행법을 선보였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누워서 단전에 자극을 주고, 떠오르는 상념을 단전에 '올려 놓은' 뒤 점점 윗쪽으로 밀어 올리고, 혀에 잠시 '앉히는' 기분으로 서서히 생각나는 것을 말하는 식이다. 이런 동작을 그는 하루 8시간씩 반복한다.

알론은 내달 7일 출국, 태국을 거쳐 티벳에서 투어를 정리할 계획이다.

그는 "각국의 선불교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면서 "일본은 참선만으로 경지에 달할 수 있다고 믿지만 한국은 참선과 함께 명상을 강조하기 때문에 폐쇄적인 자기감정을 이끌어내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 고 말했다.

그의 방한활동을 지원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아비빗 바일란(32.여)문화공보관은 "알론을 통해 한국과 이스라엘의 종교 문화가 민간차원에서 서로 교감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이 기쁘다" 고 말했다.

글.사진〓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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