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보도] 남북 특수성 고려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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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문에 실린 한 북한 관련기사가 문제돼 청와대가 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 남북간에 회담이 계속되고 남북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될수록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우려하여 당국자가 보도를 원하지 않는 내용을 언론이 보도하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 보도에서 언론자유가 어떻게 행사되고 제한돼야 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언론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권리지만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자유와 상충하는 다른 사회적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안보나 사회안전을 해치는 내용,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는 내용, 표절물.음란물 등은 자유로운 공표가 허용되지 않는다.

비밀리에 진행 중인 외교교섭의 성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의 공표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북회담은 이런 외교교섭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그 회담의 성과 즉 남북관계의 개선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의 공표행위는 정당하게 제한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대남 적화통일 노선이 명시된 노동당 규약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은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비밀이다.

그 내용이 공표되면 북측은 비밀을 지키지 않은 남측을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고, 金위원장이 노동당 규약을 수정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어 남북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당국의 뜻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 경우 언론은 언론대로 그 내용을 공표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북측의 노동당 규약 수정 의사에 부응해 남측에서 국가보안법의 개폐논의를 활성화하고 그 개폐작업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북측에서 노동당 규약을 수정하는 일이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보도는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되며 그 보도행위는 정당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남북관계에 관한 보도를 제한하는 문제는 그 보도가 남북관계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때 누구의 판단을 따르느냐가 핵심 문제다.

일반적으로는 교섭이나 회담에 임한 당국자가 속사정을 더 잘 알기 때문에 당국자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당국자는 보도를 원하지 않는 사안이 누설되지 않도록 스스로 단속을 잘 해야 할 의무도 지고 있다.

정책에 협조를 위해서 필요한 사람 외에게는 발설하지 말고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당국자의 판단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케네디 행정부가 쿠바의 피그만 침공을 계획했을 때 뉴욕타임스가 이 사실을 알았으나 케네디 대통령의 보도자제 요청을 받아들여 자세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끝난 다음 케네디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책임자에게 그 때 뉴욕타임스가 자세히 보도해서 그 침공을 사전에 막아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고 한다.

언론은 언론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에 근거해 당국의 보도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보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언론은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하며 그 판단에 특종의식이나 상업성이 개재하

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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