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의약분업 백년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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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양에서 약사가 독립적인 직업으로 최초로 공인된 것은 1240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이탈리아)의 살레르모에서 공포한 법률에 의해서였다.

때문에 이 법은 '약사의 대헌장' 으로 불린다.

그 전에는 의사.승려.주술사.향료상인 등이 약사 역할을 맡았고, 13세기 들어서는 향료상인 중 일부가 유럽 곳곳의 거리에 정착해 나름대로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 약을 취급했다.

'약사의 대헌장' 은 '의사.약사에게 면허를 부여한 후 의사는 진료만 할 수 있으며, 약은 약국에 둔다.

의사는 약국에 관련된 사업을 하지 못하며, 어떤 약국도 자기 보호아래 두지 못한다.

의사는 약국과 계약을 해서는 안되며 약국을 경영할 수도 없다' 는 엄격한 '의약분업' 규정으로 시작한다.

이밖에 정부가 임명한 감독관이 조제된 약이 법령에 맞는지 감독하고, 약사는 강도(强度).효과가 일정한 약을 조제할 것을 선서해야 하며, 약국 분포는 균등해야 하고 약값은 정부가 정한다 등의 규정이 들어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일부러 의약을 나눈 데는 독살(毒殺)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는 게 정설이다.

진료와 투약 업무를 분리하면 만일 한 쪽이 적에게 매수당하거나 역심(逆心)을 품더라도 살해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서양의학에 대해 일부 실학파 학자가 관심을 갖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는 19세기 말께 도입됐다.

일제가 병자수호조약 이듬해인 1877년 부산에 설립한 제생병원이 서양의술에 의한 최초의 병원이었다.

그러나 주로 일본거류민을 위한 병원이었으므로 1885년 선교사 앨런의 제안으로 설립된 광혜원을 효시로 보기도 한다.

제도적으로는 1907년 대한의원(大韓醫院)관제가 공포됨으로써 서구적 의미의 의사.약사.간호사 양성이 본격화했다.

최초의 약사로는 대한의원 교수를 지낸 유세환(劉世煥)을 주로 꼽는다.

의약 분업을 둘러싼 정부.의사.약사간 대화가 파국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일본의 경우 1872년 독일인 의사 2명의 건의로 근대적 의약제도가 도입돼 1890년 '약제사' 가 독립했지만 아직도 완전한 의약 분업은 이루지 못했다.

일본에선 이를 '의약분업 백년전쟁' 이라 부른다.

우리가 너무 하루 아침에, 한꺼번에 해치우려는 것만은 제발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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