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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즈’ 생각 살짝 바꿔 시장을 뒤흔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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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다림질할 때만 뜨거워지는 올리소 다리미.

‘트리즈(TRIZ)’라는 이론이 근래 업계에서 자주 회자되기 시작했다. 경영 현장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론이다. 연원은 1950년대 옛 소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군 특허심사 담당자인 겐리히 알츠슐러라는 군인이 창의성 있는 특허 4만 건을 분석해 체계화했다. TRIZ는 러시아어 앞 글자를 딴 약자로, 영어로 풀면 ‘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도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초고층 아파트에 저층용과 고층용 엘리베이터를 분리해 효율을 높인 것, 샴페인 제조를 응용한 칩 제조로 기포 문제를 해결한 것 등은 트리즈의 성공사례들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포스코 등이 트리즈 개념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창조경영’과 함께 트리즈 이론을 강조했다. 원조 러시아에서 트리즈 전문가들을 불러 창의적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양문 냉장고의 홈바가 한 예다. 냉장고 바깥에 설치된 쇠 연결고리를 보이지 않는 안쪽의 걸쇠로 바꿔 히트를 쳤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이 단순한 기술은 로열티까지 받는 국제특허로 명성을 날렸다. 포스코도 정준양 회장 주도로 트리즈 이론을 경영에 적극적으로 접목시키는 회사다. 특히 내년부터 전 직원이 트리즈 교육을 받는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의 신철균 전문교수는 ‘창조경영 마법사’라는 트리즈 혁신활동 사례를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최근 발표했다. 그가 다짜고짜 수강생들한테 던진 질문은 이렇다. “나무를 벨 때 도끼가 무거우면 잘 파이지만 힘이 들어 오래 못한다. 도끼가 가벼우면 오랫동안 여러 차례 칠 수 있지만 잘 파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가벼우면서 무거운 도끼는 없을까.” 모순된 듯한 질문에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는 ‘단순하면서 창의적 해결책’을 내놨다. 도끼 날은 무겁게 해서 힘이 실리게 하고, 도낏자루는 속을 비워 가볍게 하는 것이라는 답이다.

이처럼 트리즈류의 단순한 해결책은 세계적 히트 상품들을 낳았다. 신 교수는 올리소의 다리미를 꼽았다. 다리미는 뜨거워야 하는데, 옷을 태우지 않으려면 너무 뜨겁지 않아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리소는 다림질을 할 때에만 열이 전달되는 다리미를 만들었다. 미국 타임지가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한 제품이다. 다국적 생활용품업체 P&G도 트리즈를 활용해 치아 미백 반창고를 출시했다. 기존 제품은 미백제를 바른 치아 틀을 자는 동안 끼어야 했다. P&G는 트리즈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금연패치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간편하고 투명한 필름 형태의 반투명 치아 미백 반창고 ‘화이트 스트립’을 출시한 것. 이 회사는 또 ‘옷은 세탁기에 넣어야 빨래가 되나’라는 자문에서 출발해 욕조에 옷과 함께 넣는 작은 세탁기구 ‘타이드 버즈’를 개발했다.

신 교수는 “에디슨이 천재적 발명의 뿌리로 ‘99% 노력과 1% 영감’을 제시했을 때 1% 영감은 트리즈 개념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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