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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밤 허기 달래는 ‘웰빙 간식’ 메밀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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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이다. 메밀꽃은 초가을에 핀다. 그러나 음식 재료로서의 메밀은 겨울이 제철이다. 메밀국수·메밀묵·꿩메밀칼국수·꿩메밀만두·메밀쌀죽·메밀수제비는 겨울과 잘 어울린다.

우리 선조들은 메밀을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라 했다. 파란 잎, 흰 꽃, 붉은 줄기, 검은 열매, 노란 뿌리 등 오방색(五方色)을 지녀서다. 또 메밀은 구황(救荒)작물을 대표했다. 흉년엔 메밀대를 삶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메밀가루는 뜨거운 물에 타면 곧바로 먹을 수 있어서 비상 식량으로 이용했다.

요즘엔 미식(美食)과 웰빙을 위해 즐겨 먹는다. 다이어트 때 대체 곡물로도 인기가 높다. 특별히 열량이 낮지는 않지만 다른 곡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열량이어서다(100g당 알곡 374㎉, 가루 359㎉). 특히 삶은 메밀국수와 메밀묵의 열량은 100g당 각각 132㎉·58㎉에 불과하다.

한방에선 오래전부터 메밀을 약재로 썼다. 중국의 의서인 『본초강목』엔 “메밀은 위를 실(實)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없애준다”고 기술돼 있다. 또 『동의보감』에선 “비장·위장에 1년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내려간다. 메밀 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귀와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메밀의 대표 웰빙 성분은 루틴이다. 루틴은 비타민 P라고도 불린다. 항산화 성분이어서 혈관에 쌓인 유해산소를 없애 혈관의 노화를 막아준다. 그래서 뇌졸중·동맥경화 환자에게 메밀이 권장된다. 루틴은 혈압도 내려준다. 우리 몸에 염분이나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안지오텐신-Ⅱ(혈압을 높이는 물질)가 분비돼 혈압이 올라간다. 이때 루틴은 안지오텐신-Ⅱ의 활성을 낮춘다. 고혈압 환자는 메밀가루를 물에 탄 뒤 꿀을 넣어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메밀은 당뇨병 환자에게도 추천된다. 루틴이 인슐린(혈당을 낮추는 호르몬) 생산공장인 췌장의 활동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루틴은 우리 몸에서 일절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식품을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루틴은 메밀 외에 감자·아스파라거스·버찌·감귤·팥 등에도 들어 있다. 루틴은 수용성이므로 전문가들은 메밀국수의 국물 등 메밀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마시도록 권한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도 메밀의 소중한 영양소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이 11.5g으로 같은 무게의 두부(9.3g)보다 높다. 단백질의 질로만 따지면 식물성 식품 중에선 단연 최고 수준이다. 메밀에 든 리신·트레오닌·트립토판은 쌀·보리·밀 등엔 부족한 아미노산이다. 또 식이섬유 함량은 100g당 9.5g에 달한다. 식이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식이섬유는 희고 고운 가루보다는 겉껍질이 조금 남은 거뭇거뭇한 가루에 훨씬 많다.

메밀가루엔 전분분해효소 등 각종 소화효소가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가루 상태로 장기간 저장하면 이들 효소의 작용으로 메밀가루 고유의 특성이 사라진다.

메밀의 약점은 두 가지다. 첫째, 껍질 부위에는 소량이지만 살리실아민 등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이 물질의 해독제가 무다. 메밀국수·메밀냉면에는 무생채나 무즙을 곁들이는 이유다. 둘째, 성질이 차다. 평소 몸이 찬 사람이 메밀을 과다 섭취하면 설사·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몸이 찬 사람은 열성 식품인 겨자를 넣은 뒤 따뜻한 국물을 부어 온면으로 먹는 것이 좋다. 반면 속열이 많은 사람은 메밀·오이·배로 열을 식힐 수 있다. 셋 다 냉성 식품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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