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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인터뷰] 핀란드 산타우체국 ‘한국인 요정’ 김정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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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핀란드 로바니에미시 산타마을 우체국에 근무하는 ‘한국인 요정’ 김정선씨가 16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어린이들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고 있다. [김정선씨 제공]

전 세계 어린이들인 일년 내내 기다리는 산타클로스.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핀란드 로바니에미 시에 위치한 산타마을 우체국에는 크리스마스에 전 세계에서 약 70만통의 갻동심갽이 도착한다. 산타 우체국 직원 가운데 5명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오는 편지를 나라별로 분류하고 일부는 답장을 보낸다. 이 우체국 직원들은 일년 내내 요정 복장을 하고 있어 산타 마을 요정으로 통한다. 핀란드 사람 일색인 이 곳에 5년 전부터 한국인 요정이 등장했다. 6년 전 핀란드로 이민을 떠나 로바니에미시에 살고 있는 김정선(39)씨다. 김씨가 일하면서 3년전부터는 산타할아버지의 답장에 한국어도 등장했다. 일년중 산타 우체국이 가장 바쁘다는 12월에 14 16일 사흘동안 세번에 걸쳐 김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씨는 산타마을에 도착하는 각 국 어린이들의 따뜻하고 또 가슴 찡한 사연들을 세시간에 걸쳐 소개했다.

-산타마을에서 일하게 된 건 언제부터이고 계기는 뭔가.

“6년 전인 2004년5월 핀란드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로바니에미에 오게됐다. 로바니에미의 한국인 교민 1호가 되면서 한국과 너무 다른 생활 환경을 견뎌내야 했다. 겨울이면 해가 네 시간 밖에 없는 지역적 특성때문에 향수병이 심했다. 우연한 기회에 일꺼리를 찾기 위해 산타 우체국에 지원했는데 운좋게 취업을 하게 됐다. 인턴 기간동안 산타마을에 오는 편지를 읽다보니 하루종일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론 꼭 이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5년 넘게 일을 하고 있다. ”

-크리스마스에 편지는 얼마나 오고 답장은 얼마나 하나.

“연간 평균 50만통 정도가 온다. 2007년에는 75만통이 왔고 지난해에는 60만통이 왔다. 말이 70만통이지 크리스마스 임박해서 70만통이 쏟아지기 때문에 편지더미에 깔린다는게 맞을 것 같다. 편지를 보내는 어린이들이나 부모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도저히 이 편지를 다 읽어볼 수가 없다. 읽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읽지만 전부는 불가능하고 그 가운데서 대략 67% 정도만 답장을 해준다. 편지 내용이 좋은지 여부에 따라서 답장하는게 아니므로 답장을 못 받아도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답장도 보통은 이듬해 4월경에 발송한다. 산타마을에는 현재 영어와 핀란드어 프랑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 11개국어로 답장을 한다. 중국어 편지는 아직 없다.”

-어떻게 하면 산타 마을에 편지를 보낼 수 있나.

“산타마을의 주소는 ‘산타클로스 메인 오피스 핀란드’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냥 자국어로 핀란드 산타 마을이라고 쓰면 모두 온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산타마을’이라고만 쓴게 오고 프랑스에서는 ‘PERE NOEL’이라고만 쓰면 모두 이 곳으로 온다. 각 국 우체국들이 잘 알아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답장을 보내면 우체부 아저씨들이 영어를 잘 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배달 체계가 잘 되지않은 탓인지 반송되는 경우가 많다. ”

-나라별 분류를 하면 어느 곳이 가장 많은가.

“지난해의 경우 60만통 가운데 영국에서 25만통이 왔다. 해마다 영국 손님이 가장 많은 편이다. 영국은 부모들이 어린이가 제법 클 때까지 산타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영국 편지가 가장 많고 산타마을에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도 영국이 제일 많은 편이다.”

-나라별로 편지를 분류하다보면 나라별로 내용에 특징도 있을 것 같은데.

“가장 많이 오는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 잘 사는 나라 어린이들은 내용도 밝은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선물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레고나 닌텐도 등 장난감의 상표까지 적어보낸다. 그런가하면 산타마을에서 편지로 세계 각 국의 처해 있는 환경이나 뉴스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아프리카에서도 편지가 오는데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산타할아버지 올해는 제발 깨끗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 또는 ‘올해는 배불리 밥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등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등 분쟁지역 나라 어린이들은 ‘제발 총소리 좀 멎게 해주세요’ 같은 편지를 보낸다.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있던 해에는 참혹한 피해를 이겨낼 수 있게해달라거나 죽은 가족 친구들에 대한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편지가 많이 오나.

“처음 일을 할 때만해도 100통 미만이었는데 요즘은 1만통 정도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한국 편지의 특징은 어린이 뿐 아니라 고등학생이 절반 가량 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 전혀 없는 현상이다. 바로 고3학생들의 수능 소망 편지다. 수능을 보고난 고 3학생들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비는 편지를 많이 보낸다. 더러는 고 2학생들이 내년에는 꼭 수능 잘 보게 해달라고 보내는 경우도 있고 일부는 한국 교육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전하면 우체국 다른 직원들이 잘 이해를 못한다.”

-잊혀지지않는 편지가 있다면.

“우체국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한국의 한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가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는 '네 살 짜리 딸 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가출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고 있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선물을 한 번도 못줬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딸아이가 면회와서는 ‘왜 나는 착한 어린이인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않느냐’고 하더라. 자기 자신이 너무 못난 것 같아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고 했다.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아이를 위해서 선물 하나 꼭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사실 우리는 선물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작은 인형 하나사서 한국으로 보냈다. 지금도 가끔씩 그 아이는 잘 자라고 있을까 생각이 나곤 한다.”

-올 크리스마스 편지의 경우 달라진게 있다면.

“지난해부터 나타난 현상인데 편지를 읽다보니 경제가 확실히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오는 편지들 가운데 ‘우리 아빠가 사업이 망해서 선물을 못 준대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좀 주세요’하는 편지가 많다. 가끔은 좀 어른스런 아이들이 ‘우리 아빠 사업이 망했는데 다시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때문에 어린이들의 편지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묻어나온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아빠들이 많이 편지를 보내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아빠들도 점차 가정적이 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거나 난처할 때가 있다면.

“한국에서 오는 편지 가운데 선물 보내달라는 경우가 많은데 사연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 또는 부모가 아파서 자기가 돈을 벌어 동생들 키우는 어린이들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애절한 사연을 보내곤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일일이 선물을 보내줄 수 없을 때 참 마음이 아프다. 산타마을에 오는 한국 편지 가운데 이처럼 딱한 경우는 한국의 단체와 연계해서 조그만 선물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늘 편지를 읽고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곤한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산타마을=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8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바니에미 시에 있다. 산타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코르바툰투리 산과 가까운 곳으로 핀란드 정부가 관광 목적으로 이 곳에 '산타 우체국'을 열어 1985년부터 산타 편지 제도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산타마을이 '산타집'과 '사슴농장' 등을 갖추면서 관광코스로 개발돼 수만명의 관광객을 받는다. 크리스마스에는 연간 수십만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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