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불운한 상봉 사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상봉과 생사확인의 기쁨도 순간,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다. 자녀들과 이산의 아픔을 공유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가족불화, 골 깊은 남북간 이념갈등, 한 아버지 두 가족이 빚어내는 고통…. 세월이 흐른 만큼 안타까움도 크지만 그 그림자도 짙다.

◇ 비정〓함경북도 함흥에 사는 국군포로의 현지 자녀 金모(37.여)씨는 지난 겨울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다. 남한에 있는 배다른 언니를 찾기 위해서다.

金씨는 중국 옌볜(延邊)에 있던 한국 모 주선단체의 사무실로 찾아가 "아버지께서 병중이시며 영양실조 상태" 라는 편지를 남쪽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50대 중반의 언니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아버지의 생존 사실을 확인한 것에 만족한다" 며 더 이상의 접촉을 거절했다.

金씨에게는 경제적 부담 이상의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가 북한에 있다는 멍에에 갇혀 힘겹게 살아온 지난 50년의 세월도 억울한데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두고 새 장가 들어 자녀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북한의 金씨는 이후 두 차례 더 중국에 넘어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따뜻한 밥이라도 한상 차려드리고 싶다" 는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한 채 지난 3월 두만강을 건너다 북한군에 체포돼 공개 처형됐다.

◇ 이념〓평북이 고향인 C씨(79)는 지난해 말 북쪽에 두고 온 아들(52)과 옌볜에서 상봉한 뒤 충격을 받고 몸져 누웠다.

가족간의 애틋한 정을 기대하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찬 바람을 헤치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안가(安家)에서 만난 아들은 덤덤하기만 했다.

C씨는 아들을 부여안고 50년 동안 참아왔던 한을 쏟아냈지만 아들은 눈시울만 붉혔을 뿐 진한 혈육의 정을 느끼기 힘들었다.

C씨가 "북한 사정이 안좋아 먹고 살기 힘들다던데 괜찮느냐" 고 묻자 아들은 대뜸 "남한이 잘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도 괜찮다" 고 대꾸했다. C씨가 푸념처럼 북한 정부를 원망하는 말을 하면 아들은 달갑잖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북의 아들은 C씨와 만나는 동안 내내 이념의 장벽을 걷어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만난 지 6시간도 못돼 헤어졌다. 아들은 C씨로부터 6천달러를 받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C씨는 "이념은 무슨 이념이야. 그 놈이 내가 두고 온 것을 원망하는 것이야" 하며 애써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시름시름 앓아 누웠다.

◇ 돈〓대전에 사는 C씨(80)는 1998년 8월 북쪽 형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북에서 먼저 연락해온 이유가 뻔했지만 가족을 두고 혼자 월남, 50년 세월 동안 회한과 그리움에 시달리던 C씨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C씨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6개월마다 꼬박꼬박 1천5백달러씩 보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당 간부에게 '기름칠(뇌물)' 을 이유로 형이 계속 돈을 요구하자 경제력에 쪼들린 C씨는 혈육의 정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겨레하나되기운동연합측에 따르면 북한의 가족이 먼저 찾아 연결된 남한 가족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경비 등을 이유로 상봉 또는 지속적인 교류 등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평북 출신 실향민 J씨(72)는 97년 북쪽에 남은 형제들의 생사까지 확인했으나 상봉에 따른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연락을 포기했다.

J씨는 "형제들이 함께 살아 있다면 비용도 분담해가며 같이 찾아보겠지만 이산의 아픔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아들.딸에게 손벌릴 처지는 아니었다" 고 털어놓았다.

◇ 두 가족〓수원에 사는 S씨(75)는 전쟁 전 북에서 아내와 당시 4세 된 아들을 두었다. 국군치안대를 조직해 활동하다 1.4후퇴 때 아내와 아이를 챙기지 못하고 월남, 이산가족이 됐다. 그리고 62년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현재의 아내와 결혼, 슬하에 아이 둘을 두었다.

90년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한 틈을 타 몰래 가족찾기에 나선 S씨는 93년 아직도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북의 아내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백두산 관광을 핑계로 중국으로 들어가 만나고 싶었지만 번번이 여행사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믿고 따라준 남쪽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결국 S씨는 "이승에서의 만남은 이게 한계인가 보다" 며 한맺힌 꿈을 접어두고 있다.

정용환.김성탁.손창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