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미국의 상징’에 쏟아지는 뭇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만은 예외다. 마치 우즈의 사생활에 온 국민이 전자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여인이 등장한다. “우즈가 지금 몇 번 홀까지 간 거죠?”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다. 그렇다고 우즈를 반면교사로 삼아 가정에 충실하자는 교훈을 새기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 우즈의 사생활을 캐고 있는 매체 대부분이 평소 선정적 보도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곳인 것만 봐도 그렇다.

뭇매를 맞고 있는 건 우즈뿐이 아니다. 이번엔 월가의 내로라는 은행장들이 줄줄이 백악관으로 불려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월가의 살찐 (도둑)고양이”란 욕을 먹은 것으론 모자라서다. 한 시간에 걸친 질책이 이어지는 동안 은행장들은 살찐 고양이는커녕 고양이 앞의 생쥐가 됐다. 대통령 말씀이 끝나기 바쁘게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겠다는 은행장들의 덕담이 쏟아지는 광경은 왠지 어색해 보였다.

우즈와 월가는 한 가지가 닮았다. 승자 독식의 대명사란 거다. 옆 사람은 상관 안 한다. 나는 이기기만 할 뿐이고, 그래서 번 돈은 내 맘대로 쓸 뿐이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땐 ‘미국다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 잘리는 풍파를 겪은 서민 가슴엔 응어리가 맺혔다. 그 속에서 승자에 대한 반감이 자랐다. 어쩌면 미국 서민은 우즈의 몰락과 월가의 굴욕을 지켜보며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승자와 패자를 편 가르고,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를 때리는 수법은 정치가에게 늘 달콤한 유혹이다. 강자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해 할 유권자가 걱정할 사람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이미 뼈아프게 봐왔다.

더욱이 승자에 대한 저주는 정신 건강엔 몰라도 현실에는 도움이 안 된다. 우즈가 빠진 미국프로골프(PGA) 대회는 김 빠진 맥주가 되기 십상이다. 벌써 발을 빼려는 스폰서가 줄을 섰다. 골프야 재미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월가는 다르다. 미국 철강·가전·자동차산업이 일본에 이어 한국·대만·중국의 도전에 잇따라 무너졌어도 미국 경제가 버텨낸 건 누가 뭐래도 금융산업 덕이었다. 월가는 미국 금융산업의 심장이다.

월가를 펄떡펄떡 뛰게 만든 건 뭔가. 버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인센티브에 대한 믿음이었다. 오바마는 그걸 탐욕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애초부터 개인의 탐욕 위에서 번성한 게 아니었던가. ‘잘살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 그 에너지를 원자폭탄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에 이용한 게 자본주의 아니었던가 말이다. 경제원론에나 나올 법한 질문을 시장경제의 본가라는 미국에서 맞닥뜨릴 줄이야.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