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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⑦ 남극 도둑갈매기는 닭다리 킬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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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어제부터 시작된 보급품 하역작업이 막바지다. 평소 3~4일이나 걸리는 일을 날씨가 좋아 이틀만에 끝냈다. 콘테이너로 가져온 물품을 크레인과 지게차로 바지선에 옮긴 뒤 부두에 하역하는 작업은 번거롭고도 힘든 작업이다. 작업중에 유빙이 밀려오면 대원들은 보트를 이용해 멀리 밀어낸다. 유빙이 바지선을 치거나 부두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기지는 2007년부터 수선 작업이 진행중인데 이 때부터 철제부두가 건립되고 있다. 날씨가 험해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공기가 길어져 아직도 완공을 하지는 못했다.

막바지 하역작업중에 조그만 사고가 발생했다. 냉동식품이 담긴 박스 몇개를 바다에 빠뜨린 것. 조디악을 이용해 부랴부랴 건졌지만 이미 물에 젖은 종이박스가 찢어지면서 내용물이 바다에 흩어졌다. 닭다리였다. 소중한 먹거리였지만 내려야 할 물건들이 많아 일부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바지선 주위로 약 30여마리의 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쿠아들이었다. 한국이름으로는 도둑갈매기. 어디서 이렇게 많은 녀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을까. 하역작업이 있을 때는 몇마리씩 주위를 맴돌기는 하지만 오늘은 좋아하는 닭다리가 바다에 떠다니는 만큼 떼로 몰려든 것이다.

녀석들은 물에 빠져 있는 닭다리를 건져먹기 위해 그야말로 아귀다툼을 했다. 닭다리 하나를 놓고 대여섯 마리씩 달려 들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꽁꽁 언 닭다리는 처음에는 바닷속으로 갈아 앉았다가 잠시후 녹으면서 바다위로 떠올랐다. 새끼 펭귄이나 잡아먹던 도둑갈매기들에게는 닭다리는 별미인 셈이다. 냉동식품이라서 냄새도 나지 않을 텐데 새들은 어떻게 알고서 떼거지로 모여들었을까. 해답은 녀석들의 시력에 있다. 온통 하얀 눈 위에서 먹이를 찾으려면 시력이 좋아야 한다.

지금 세종기지는 잿빛 하늘에 바람이 거세다. 숙소의 유리창을 닫았지만 바람 소리가 방안으로까지 밀려들었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다.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 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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