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현수 '기타가 세워져 있는 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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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골목엔

누군가 버린 기타가 있어 아이들은

차마 들고 가진 못하여

저마다 노래나 한두곡 하다간 간다

옆집 쓰레기통 앞 쯤에서

울리던 기타는

이제 나의 자취방 앞에까지 와서

오늘 하루

아이들의 노래는 공으로 들었다

얼마나 신기한 노래들인가

기타줄을 아무렇게나 두드려도

저들의 노래는

은핫물이 되어

오늘 하루 빈 골목을 씻어내고 있다

- 박현수(34) '기타가 세워져 있는 골목' 중

오늘 하루는 이렇게 아이들이 들려주는 천상(天上)의 노래로 즐거우리라. 골목에 버려진 기타는 시인의 창가에 와 종일토록 줄을 뜯는다. 쓰다 버린 것, 고장난 것들도 시인의 눈이나 귀에 닿으면 살아나와 모두 맑은 노래가 된다. 노래는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가 되고 땅으로 내려와 골목을 씻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의 귀가 열려 있는 박현수만이 들을 수 있는 것.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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