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유전인가 환경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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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권투선수들은 왼손잡이 상대를 껄끄러워한다. 야구에서도 왼손잡이 투수가 희소가치를 꽤 누린다. 상대방 선수들이 왼손잡이에 덜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영국 수필가 토머스 칼라일은 다른 얘기를 했다. 옛날의 싸움에서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으로 방패를 들기 때문에 심장이 자연스럽게 가려져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낮고, 따라서 왼손잡이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그래서 오른손잡이가 자손을 더 많이 퍼뜨린 결과 세상에 오른손잡이가 더 많게 되었다는 것이다.

칼라일이 이 얘기를 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다. 진화론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칼라일이 비꼬는 뜻에서 지어낸 얘기다.

그런데 이 얘기에는 무시하지 못할 일리가 있다. 오늘날에도 각종 안전사고 희생자에 왼손잡이의 비율이 높다는 조사가 있다. 시설이나 관행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돼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왼손잡이는 유전되는 것인가. 부모가 다 오른손잡이일때 왼손잡이 자녀의 비율은 8%, 한쪽이 왼손잡이일 때는 20%, 양쪽 다 왼손잡이일 때는 5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왼손잡이를 물려받는 경향이 있지만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란성 쌍둥이는 똑같은 유전자를 나눠 갖는 사이인데도 한쪽이 오른손잡이, 한쪽이 왼손잡이인 경우가 18%나 된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유전설을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암연구소의 애머 클라 박사가 새로운 왼손잡이 유전설을 제기하고 나서서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른손잡이 유전설이다.

사람들의 70~80%는 오른손잡이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오른손잡이가 될 수밖에 없고, 이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20~30% 사람들은 어느쪽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왼손잡이가 낀 일란성 쌍둥이는 모두 이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된다는 설명이다.

클라 박사는 쥐의 돌연변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유전자 조작 실험 중 심장이 오른쪽에 달린 쥐가 나타났는데, 그 교배에서 새끼의 절반이 같은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심장이 왼쪽에 붙도록 결정해주는 유전자를 이 쥐들이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오른손잡이도 마찬가지 원리라고 그는 본다.

유전설이 힘을 얻고는 있지만 환경결정론도 만만치 않다. 근년 선진국에서 왼손잡이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 온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왼손을 쓰려는 아이들을 오른손잡이로 '교정' 하는 부모와 사회의 압력이 줄어든 것이다. 인간의 개성이란 역시 유전과 환경이 얽혀져 결정하는 것이다. 왼손잡이를 비롯해 소수파(少數派)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의 환경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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