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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소설사 조경란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서울 봉천동 2층집 옥탑방에서 글을 쓰는 조경란(31)씨는 최근 자주 산책을 나간다. 봉천동 사거리에서 서울대쪽으로 향하는 언덕길이 산책로.

길가에는 잎이 한창 무성해지고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신록의 때깔을 자랑하며 도열해 있다.

"나뭇잎이 파릇파릇 돋는 것을 보면 너무 예쁘고 신비롭고, 또 고맙기도 해요. 새로운 생명을 보느라 자주 숲이 있는 곳을 찾게 돼요. 예전 같으면 무심히 걷던 길도 요즘은 혹시 지나가는 개미라도 밟을까 조심스럽게 걷죠. "

흰색 재킷보다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큰 키에 많이 마른 체구는 병색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얘기를 나누다보면 곧잘 웃는 모습이 병색을 털어내고 일어나는 사람의 표정처럼 밝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변하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전생(前生)과 윤회(輪廻)에 대한 글을 쓰려고 힌두교.불교의 세계관을 공부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생기고, 나쁜 업(業)을 쌓지 말아야한다는 의지도 강해졌다. 생각이 밝고 맑아져 건강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최근 내놓은 소설집 '나의 자줏빛 소파' 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외부세계와 단절된 주인공의 독백이 많다. 마치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옥탑방에 갇힌 작가처럼 제한된 자기만의 공간에서 안으로만 파고든다.

이런 어둠과 단절은 조씨를 문학의 세계로 들어서게 한 젊은 날의 칩거에서 비롯된 듯하다.

조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5년간 아무일도 하지않고 집안에서 책만 읽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이었다지만 한 작가를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조씨는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 노트 한 권 분량의 시를 썼다. 그리고 "체계적인 문학공부를 해야겠다" 고 결심하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힘겨운 경험의 농축이 있었기에 졸업과 동시에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등단하자마자 문학동네 신인상도 받았다.

최근 그의 변화는 최근작인 '망원경' 에서 감지된다. 갇혀있던 주인공은 망원경을 통해 바깥세상의 밝은 빛을 찾는다.

"이제 할 말이 너무 많아졌어요. 다음 작품에서 주인공은 더 많은 사람과 사물 속에서 빛을 보게 될 겁니다. "

새로운 변신을 하기 위해 작가는 5월말엔 강원도, 9월쯤 유럽으로 여행을 가고, 2년쯤 뒤에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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