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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백두대간에 기대 사는 사람들 그들이 풀어놓는 얘기 보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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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백두대간 민속기행 1, 2
최상일 지음, MBC프로덕션
536· 512쪽, 각권 1만 8000원

2002년의 화제영화 ‘집으로’ 가 기억나시는지. 뜻밖에 여기서 그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의 육성을 들었다. 글쓴이가 충북 영동군 상촌면에서 이분을 만난 얘기다. 영화를 찍기 전이다. 글쎄 할머니는 날쌘 청설모를 그 해에 열다섯 마리나 잡았단다. 호두 훔쳐가는 놈들을 두고 볼 수 없어 쥐덫 다섯 개를 나무에 매달아 잡았다나. 할머니는 다가오는 겨울에 서울 아들네 집에 갈 일을 걱정한다. “추우면 또 딜러 올 낀데, 우짤가 싶어, 하하하… 걔들이 날 여~ 안 놔둬요, 데리고 가요, 가면 답답해요… 골이 딱딱 아파.” 시원찮은 벼농사 얘기며 뽕따러갔다가 호랑이를 본 얘기를 하다가 먼저 가신 영감님 흉을 보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책은 할머니처럼 백두대간에 기대 사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방송 프로듀서인 글쓴이의 발품이 예사롭지 않다. 300여개 마을을 답사하고 그중 113개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골랐다. 등장인물들의 이력은 각양각색이다. 토박이가 있고, 난리를 피해 온 이가 있고, 길지를 찾아든 비결파도 있다. 돈 없어 밀려온 이가 있고, 돈 벌러 들어온 이도 있다.

경북 상주에서는 서낭당 나무 아래 놓인 싱싱한 과일을 보고 아직도 치성을 드리는 이가 있음을 확인한다. 소금을 산에 묻는 풍습은 화재를 막기 위해서란다. 기우제 뒤 돼지 피를 바위에 바르는 이유는, 산신을 노하게 만들어 비로 더러운 피를 씻어내려 함 아니겠냐고 해석한다. 허허벌판인 대관령 인근이 예전엔 가재가 바글바글한 원시림이었다는 얘기, 겨울에 백두대간이 북서풍을 막아줘 충북보다 경북 쪽에 감나무가 잘 자란다는 얘기, 60년대 오지에 출몰하는 간첩을 막으려 화전민들을 모아 봉화 산꼭대기에 고랭지 채소단지를 만든 얘기처럼 곳곳에 인문지리학적 지식들이 쏠쏠하다. 노인들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아쉬워한다. ‘지 애비 제사 지내고도 와서 술 한 잔 자시라 소리 없는 놈의 세상’에 혀를 끌끌 찬다. 질박한 사투리로 풀어놓는 말들을 그대로 옮겼으니 토속어 자료로도 그만이다.

혹시 책 속의 동네에 가보고 싶은 분들은 큰 기대 않는 게 좋겠다. 글쓴이가 10년 만에 다시 가보니 그새 많이들 돌아가셨단다. 인심 후하던 무주구천동의 향미식당도 없어지고, 삼도봉 골짜기에 하나 남아있던 억새집은 집터조차 찾기 힘들다나. 아, 김을분 할머니. 잡은 청설모는 구워서 개를 줬단다.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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