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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춤추는 군수] 4.끝 중앙일보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본지는 재미교포 로비스트 린다 김(48·여·한국명 김귀옥) 로비 의혹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무기구매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지난 16일자부터 3회에 걸쳐 진단했다.시리즈 연재를 마치며 린다 김 사건을 중간 점검하는 뜻으로 직접 현장 취재에 참여한 취재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취재 뒷 얘기를 나눴다.

김민석 군사전문 기자와 사회부의 채병건·최재희·박현영 기자가 참여했다.

- 이번 취재는 관련자료를 확보한 뒤 정.관계 '인사들과 국방부 전.현직 '인사 등을 일일이 만나 확인했다는 점에서 탐사보도 (investigative reporting) 의 전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의의는 본지가 취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 를 놓고 많은 고민을 거쳐 '국민의 알권리' 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라는 두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보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 기사가 나가기 훨씬 전부터 보도의 타당성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이뤄졌습니다. 판사 출신인 변호사 두 분과 현직 판사 한 분에게 자문을 했습니다. 특히 최초 보도가 나가기 전날에는 린다 김의 변호인에게 기사 내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보도대상에는 남녀 관계와 연서(戀書)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자칫 황색 저널리즘적인 흥밋거리로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 기사내용을 매우 신중하게 걸렀습니다.

확보된 취재내용 중엔 대중의 시선을 끌만한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불법 로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은 한 줄도 싣지 않아습니다.

- 보도가 나간 후부터 군(軍)측은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군 내에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 관련된 인사들이 아직 많은 데다 지금까지 백두사업에 대해 논란이 일 때마다 문제없다는 발표를 해왔던 국방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 보도임에도 의혹들만 남긴 채 검찰 수사가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특히 린다 김이 국내에 반입한 30억원 중 20억원의 행방과 용처는 의문입니다. 영국의 회사로 보냈다는 두루뭉실한 린다 김의 진술 외에는 확인된 내용이 없습니다. 린다 김이 자진해서 입국한 이유도 의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 어쨌든 이번 보도로 국방부 무기구매 과정의 문제점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현재 무기획득 과정이 24단계로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워낙 복잡합니다. 방위산업체나 무기구매업자들은 군의 담당 실무자나 윗선과 '관계' 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 취재과정에서 린다 김은 부적절한 관계는 물론이고 부적절한 로비도 없다고 줄곧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린다 김은 현재 군 실무자에게 향응과 금품을 제공해 뇌물수수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있는 인물인만큼 그녀가 로비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본지는 린다 김에 대해 상당한 내용을 취재 중입니다.

- 취재 중 재미있던 경험은 대부분의 인사들이 처음에는 '린다 김이 누구냐' 는 식의 반응을 보이다가 확보된 물적 증거와 진술 등을 근거로 추궁해 가니까 그제서야 '알기는 하지만 몇 차례 식사나 같이 했던 사이' 정도로 말을 바꾼 점입니다.

- 근본적으로 불법 로비가 기생할 수 있는 배경엔 규정된 절차나 공식적인 경쟁보다 보이지 않는 곳의 인맥 접촉이 더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습니다. 본인들의 반성은 물론 언론의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어려웠던 점은 사건의 내용 중 대다수가 군사기밀로 보호받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98년 당시 특별평가팀의 백두사업에 대한 조사나 기무사의 린다 김 등에 대한 내사 결과 자체가 기밀사항으로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 중 현직 군 관계자들은 물론 전역한 인사들까지 '기밀누설' 이라는 족쇄때문에 취재팀과의 접촉을 꺼리거나 만나도 실명 보도를 극구 거부했습니다. 한 인사는 집으로는 절대 전화하지 말라. 연락은 내쪽에서 하겠다' 며 감청 걱정까지 했습니다.

- 정치권의 반응도 묘했습니다. 여권은 매우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고, 야권도 이상하게 적극성을 띠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관련자 중에 구 여권에서 현 여권으로 옮겨진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고, 린다 김의 자진 귀국 배경을 놓고 세간에서 여러 소문이 돌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이 여야 할 것 없이 건드려 봐야 그다지 이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 '뜨거운 감자' 였다는 인상이 듭니다.

검찰의 재수사 불가 방침에는 이같은 정치권의 담합 분위기가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아쉬운 점은 본지가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대원칙에 의거해 기사를 취사선택해 나갔음에도 일부 언론에선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린다 김의 부모나 린다 김의 개인적 경력, 모델 활동 등을 마구 보도해 사건의 본질을 다소 왜곡한 부분입니다.

더구나 검찰이나 국방부에선 언론매체들의 보도 흐름이 사생활쪽으로 넘어가자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해 언론이 수사불가의 빌미를 준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어쨌든 두고두고 검찰의 원죄로 남을 것입니다.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그때 재수사의 동기를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이미 상당히 파헤쳐져 있는 로비 의혹에 대해 검찰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본지는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 편지 등 핵심자료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도 온갖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방법이나 부적절한 경로를 통해 자료를 입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아 사건이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입수과정을 공개치 않고 있지만 본지는 추후 이 과정을 소상하게 밝힐 용의가 있습니다. 지금 공개치 못하는 게 유감스럽습니다.

- 현재 취재팀에는 비록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린다 김이 접촉한 정.관.재계 인사들에 대한 상당한 정보가 축적돼 있습니다. 공개된 부분은 국방부내 무기구매 관련 로비 의혹 부분만 입니다.

취재는 계속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 독자들 머리 속에 연서만이 남도록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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