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토머스 기자생활 정리한 자서전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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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케네디에서 클린턴까지 8명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해온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80)가 지난 17일 45년을 몸담아온 UPI통신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만 40년을 취재한 '살아있는 전설' 의 갑작스런 은퇴 소식에 새삼 그가 쓴 회고록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된 이 책은 레바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인종과 성차별을 받으면서도 성실함과 억척스런 기자정신으로 1942년 언론에 첫발을 디딘 이후 백악관 출입기자단장에 오르기까지 베테랑 여기자의 삶과 미국 대통령 일가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전직 여기자 모임인 한국여성언론인연합 소속의 고혜련.김용란.김현숙.이선영씨가 공동번역해 출간됐다. 답게 刊.

한국외국어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고혜련씨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늘 소모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백악관만 40년을 출입한 토머스의 일생을 통해 해답을 찾았다" 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을 지킨 한 여기자의 프로정신은 비단 기자뿐 아니라 벤처 열풍 속에 가던 길을 중단하고 방황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번역자들은 "토머스가 남다른 정열과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뒷받침해주고 북돋워준 것은 미국 사회" 라며 "우리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많다" 고 입을 모았다.

40년을 한결같이 매일 새벽 5시30분 백악관 기자실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 토머스는 은퇴 발표 당일까지도 제일 먼저 기자실에 도착해 전화를 받았다.

책 출간과 토머스의 한국 초청을 준비해온 고씨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미국의 아주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해도 항상 토머스가 40대의 젊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며 "집에서 손자를 돌보기도 힘들 나이에 정력적으로 일하는 토마스의 모습에서 전율까지 느꼈다" 고 밝혔다.

책 제목인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는 말 그대로 백악관 기자회견장의 토머스 자리를 말한다.

맨 앞줄에 앉아 첫 질문을 던지고 그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해야만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된다.

대통령들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부 내에서는 악명높지만 미국 국민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은 토머스는 대통령을 다룬 영화 '데이브' 에 카메오로 출연했으며 최근 백악관 기자단 연례파티에서 상영됐던 클린턴 주연의 코믹 영화에서도 출입기자 중 유일하게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언론인연합(회장 신동식)은 오는 7, 8월쯤 토머스를 초청할 계획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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