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학무기 폐기 알릴건 알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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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군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충북 영동의 군부대 안에 비밀리에 화학무기 폐기시설을 건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전성 문제와 환경오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시인도 부인도 않고 있지만 이미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된 만큼 군당국이 구체적 답변을 내놓아야 할 문제가 됐다.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인 북한에 대비해 미군이 화학무기를 들여왔고, 1997년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함에 따라 미군과 우리 군이 함께 폐기작업을 준비 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군 당국의 함구(緘口)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한이 여전히 대량 화학무기를 갖고 있고, 화학무기 보유 사실이 공개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다.

그러나 화학무기금지협약에 가입했고, 폐기 중인 사실이 알려진 이상 비밀로서의 가치는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제는 군 당국이 폐기공장 인근 주민들의 불안과 환경오염 우려에 대해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화학무기의 가공성은 널리 알려진 바다.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혈액을 굳히는 등 가공할 살상무기다.

폭탄처럼 일정 범위 내에서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을 띤 대량살상 무기다.

폐기과정에서 유해물질이 유출돼 인명사고나 환경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등에서도 화학무기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 논란이 일고 있고 6천9백명의 사망자가 난 84년 인도 살충제공장 폭발사고 등 화학물질 유출 피해사례는 적지 않다.

당국은 외곽지역의 수질.토양.대기 오염 등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무기의 성분과 기능은 무엇인지, 소각이나 매립 등 폐기방식은 안전성이 확인된 것인지, 오염방지 장치는 갖추고 있는지, 돌발사고의 가능성에 대비해 어떤 대책을 세워놓고 있는지 등 알릴 것은 알려 주민의 불안을 덜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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