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승주 주미대사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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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미 관계가 위기라는 말들이 많은 가운데 대미(對美)외교의 현지사령관격인 한승주 주미대사가 외교관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보여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 대사는 지난 10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자택에서 개최한 파티에 불참한 채, 부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당시 파티엔 럼즈펠드 장관 외에 파월 국무장관,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주요 인사들과 이라크에 파병한 주요국 대사들이 참석했다. 물론 한 대사 쪽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자기 부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느라 중요한 공적 행사를 소홀히 한 것이 된다.

최근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당대회 때 이라크 참전국에 감사를 표시하면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아 국민의 심기가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다 북한 폭발사건, 남한 핵문제 등 민감한 이슈들이 잇따라 발생해 미국 측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책임자들과는 어떻게 하든 한번이라도 더 접촉해 정보도 얻고 한.미 간 유대를 더 돈독히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외교부는 "파월 등이 오는지 몰랐다" "만찬이 아니라 뷔페 리셉션인 줄 알았다"는 식의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는 더 말이 안 된다. 미 정부의 핵심인사가 초청하는 파티가 왜 열리며, 참석자는 누구인지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기초적인 일이다. 특히 상대가 핵심인사인데 지금과 같은 한.미 관계로 볼 때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외교부는 현지 대사가 판단해 참석 여부를 결정할 문제라면서 징계나 공식적인 주의 조치를 취할 생각이 현재까지는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간 정보교류가 안 된다" "미국의 마음이 한국을 떠났다"는 이 시기에 주재국 대사의 집무 행태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대사뿐 아니라 외교부 전체도 다시 한번 외교관의 사명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외교관 한명 한명이 쓰는 경비를 생각해 보라. 국민의 피땀인 세금인데 이런 식으로 느슨한 근무를 해서야 되겠는가. 한 대사와 외교부의 맹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