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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친구와 함께 하는 아동 정신 치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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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반려동물을 활용한 치료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물매개치료(Animal Assisted Therapy)로 불리는 이 방법은 약물 투여 대신 동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재활·정신질환·행동장애 치료를 돕는 행위다.

치료 고통과 심적 부담이 적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강아지와 친구 되기를 통해 아이들의 행동발달을 돕고 있는 현장을 찾아갔다.

박정식 기자

동물과 교감하며 사회성 도모

남준일(오른쪽)씨가 서울 중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아동에게 동물치료견인 ‘아라’에게 명령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황정옥 기자]

“아라야, 기다려! 앉아!” “입을 크게 하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해야 해요.” “아라야, 이리와 이리” “잘 따라오는지 보면서 함께 가야죠. 목소리도 더 강하게.”

11월 30일 오후 4시 서울 광진구 중곡종합사회복지관 강당. 이지은(가명·10)양이 목줄을 잡아 끌며 자기 몸집의 두 배가 되는 리트리버 개 ‘아라’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강당을 돌고 있다. 자원봉사자 남준일(건국대 수의과 3년)씨가 아라를 조정하는 법을 도와주고, 삼성에버랜드 치료도우미견센터의 권민정 치료사가 강아지와 교감하는 법을 알려줬다. 이양은 자신을 따르는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까르르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과 짝꿍을 맺은 퍼그, 시추 등을 데리고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함께 걷고 뛰거나 명령을 내리며 복종훈련을 반복했다. 곳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권씨가 훈련 내용에 대해 설명해줬다.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훈련은 올바른 언어사용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죠. 자폐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이들의 경우 이를 통해 기다림·규칙·교감 등을 배워 사회성을 키울 수 있죠.” 남씨는 이양이 말이 어눌하고 사고력이 부진해 고립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처음엔 대인기피증이 있던 이양이 개를 피하며 울기만 했어요.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등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재활치료 고통 줄이고 동기 부여

복지관 아이들이 삼성에버랜드 치료도우미견센터에서 나온 치료견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중곡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 3월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해 매월 한 차례씩 운영해오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치료도우미견센터가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건국대 수의과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교수들이 연구 분석을 각각 맡아 참여하고 있다. 지적·발달장애 아동 8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진행할 계획이다. 인사나누기·쓰다듬기 등 친해지기 활동부터 시작해 먹이주기·복종훈련 등 단계별로 과제를 수행하도록 구성됐다.

복지관이 지난달 초 중간 점검한 결과 아이들이 처음엔 거부감이 심했으나 점차 개에게 친근감을 나타내거나 함께 산책을 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가 길러졌다. 특히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데 서투른 지적장애아동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복지관의 김송희 팀장은 “개에게 먹이주기·산책시키기 등을 시키면서 책임성과 사회성을 길러준 것 같다”며 “익살스러운 강아지들의 동작을 보며 많이 웃도록 자극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동물매개치료는 재활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냈다. 인천 부평 글로리병원 어린이재활치료센터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뇌성마비아동 12명에게 동물매개치료를 실시했다. 프로그램은 동물과 인사하기·먹이주기 등 관계맺기와 특기훈련·게임활동·퍼즐맞추기 등 친교활동, 과제수행으로 꾸며졌다. 그 결과 아이들의 자신감·적극성·독립심이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병원은 “물리치료와 보조기구 사용 시 수반되는 고통과 싫증을 잊게 해주고 환자에게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사재형 글로리병원장은 “치료견의 모습이 환자들에게 자아존중과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정신과에서도 대인관계·자기주장·문제해결능력·자아존중감이 발달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제도미비, 동물질병 대비와 바우처제 이용

동물매개치료는 의사·수의사·동물조련사·동물치료사·물리치료사·간호사 간 협력관계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시행 초기인 데다 법적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치료가 봉사활동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알레르기 등 동물 질병에 대한 대비와 동물치료사 및 치료도우미견 육성이 부족한 상태다. 보험처리나 치료견의 법적 보호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다. 한국동물매개치료복지협회 이형구(서정대 애완동물과 교수) 회장은 “동물매개치료제도 도입을 위해 업계·의학계·국회 간 논의가 이뤄지는 중”이라며 “각 시·도에 설치된 장애아동 바우처 제도를 이용하면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의 질병 특성에 맞게 미술·동물·놀이 중 적절한 심리치료 선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동물매개 활동·치료 관련 국내 기관

치료 삼성에버랜드 치료도우미견 센터(http://mydog.samsung.com)·한국HAB(Human Animal Bond)협회(www.kshab.or.kr)·한국동물병원협회(www.kaha.or.kr)·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www.helpdog.org)·삼성전자승마단 재활승마 자원봉사(horse.samsung.com)

교육 경북대 하브랜드(http://sap.habland.com)·경북영광학교 부설 창파동물매개치료연구센터(www.kbyk.sc.kr/class)·공주대 특수동물학과(http://clas.kongju.ac.kr)·원광대 동서보완의학대학원 동물매개치료전공(http://ewcam.wonkwang.ac.kr)·원광대 생명자원과학대 애완동식물학과(http://pets.wonkwang.ac.kr)·서울호서전문학교 동물매개복지과(http://aaw.shoseo.ac.kr)·서정대 애완동물과(http://seojeong.ac.kr/re_seojeong/sub/animal.asp)


☞동물매개치료(AAT=Animal Assisted Therapy)= 동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체·정신·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치료법. 1792년 영국 요크 정신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자아통제능력 향상을 위해 닭·토끼를 기르게 한 데서 시작됐다. 현재 정신질환 분야에서 약물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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