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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전하는 사랑의 온기, 멘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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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송파구청 홈페이지에 ‘멘토링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저소득층 가정의 초·중생들로 구성된 멘티(멘토링 대상자)와 1대 1 결연을 맺고 조언자 역할을 해 줄 자원봉사자를‘멘토’라는 이름으로 모집한 것. 멘토 활동은 3월부터 시작됐다. 8개월 여가 지난 현재, 이 나눔 활동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했다.

멘티 걱정에 밤을 새다

황종미(55)씨는 혜빈(12)이와 혜인(9)이라는 귀여운 자매를 멘티로 두고 있다. 중학교 음악교사 출신인 황씨는 지휘도 가르치고 노래도 함께 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 달 째 학습진도는 덧셈과 뺄셈, 구구단 외우기에 머물러 있다. 첫 만남에서 황씨는 간단한 덧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5학년 혜빈이를 보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동생 혜인이 역시 또래들보다 학습 수준이 낮았다. 아이들의 엄마 역시 지적 장애가 있는 상태였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 증세가 심각했다. 황씨가 이들 가정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문제를 발견하지도 못했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이들과 엄마는 11월 초 지적 장애 3급 판정을 받고 구청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두 아이는 어느새 황씨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됐다. “잠자리에 누우면 ‘아이들을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돼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생활이 나아질까 고민하죠.” 한번은 “엄마가 해주는 카레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있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서 괜히 설레고 흐뭇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의 엄마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조금씩 채워주면서 아이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다

대학원생 박원경(27)씨는 중학교 2학년 아영이와 매주 1~2차례 만난다. 함께 수학과 국어,영어 등 뒤쳐지는 과목을 공부하고 고민 상담도 한다. 극장도 자주 가는 편이다. 아영이 나이에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새로운‘언니’ 덕분에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래서 멘토 활동비로 매달 받는 15만원은 거의 전액 아영이에게 사용된다.

“아영이는 낯가림이 많고 소극적인 아이예요. 한창 예민한 나이이기도 해서 쉽게 친해지기가 힘들었죠. 그런 아이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고 교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정말 멘토가 되길 잘했구나’ 싶었어요.”

“어디서 얻었다”며 무뚝뚝하게 건네는 볼펜과 수첩에는 아영이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지난달 빼빼로데이 땐 과자를 준비해 박씨를 감동시켰다.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이니 더 또박또박 예쁘게 써봐”라는 박씨의 말에 아영이는 또박또박 정성스레 쓴 독후감 노트로 화답했다. 아영이의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박씨에게 열리고 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 하나면 멘토 될 수 있다

대학생 김동욱(24)씨는 멘토링 활동을 통해‘멘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김씨의 멘티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범준이. 김씨는 “공부에 대한 열의도 있고 생활도 모범적으로 곧잘 하는 범준이에게 일방적으로 조언을 하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후원자가 아니라 편안한 ‘형’으로 다가가 소통하니 생활은 물론 정서적인 부분까지 많이 교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 초 송파구는 새 멘토들을 모집할 예정이다. 물론 올해 활동이 우수했던 멘토들에게는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에 참여한 멘토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은 “멘토링은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이번 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는 황씨는 “마음이 있으면 시간은 쪼개고 쪼개면 생깁니다. ‘나눔’이 내 일상이 되는 거죠. ‘기부’나‘후원’에 비해 멘토링은 얻는 게 너무 많아요. 아이들의 예쁜 마음을 조금씩 얻는 기분, 한번 느껴보세요.”라며 활짝 웃었다.

[사진설명]“아이들 덕분에 저희도 사랑을 배워가요” 지난 3월부터 8개월 동안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에게 생활 조언자가 되어준 ‘송파구 멘토링 봉사단’ 박원경·황종미·김동욱씨(왼쪽부터).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 사진=김진원 기자jwbest7@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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