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영수회담] 여야 해석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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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24 영수회담을 계기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국정 공조' 움직임이 빨라졌다.

양당은 회담에서 합의한 의제들을 조속히 이행키로 하고 양당 3역회의 상설화, 정책협의체.미래전략위원회.정치개혁특위 등의 조기 가동 등을 통해 특히 민생 관련 현안들을 우선적으로 다룰 방침이다.

그러나 대북 경제지원의 국회 동의문제 등을 둘러싼 일부 시각차도 노출되고 있다.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될까. 두 사람은 '필요한 경우 수시로' 영수회담을 열기로 약속했다.

이 합의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과거 국면전환을 위한 일회성 행사에 불과했던 영수회담은 더이상 열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제때에 열릴 경우 정국에 찬바람이 부는 일은 많이 없어질 것이다. 여야간 협력 분위기도 더욱 무르익어 정치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적절한 만남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영수회담 정례화를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례적으로 만난다고 못박는 것은 여야 모두에 부담이 된다" 는 게 청와대측 반응이었다.

한나라당이 정례화를 요구한 것은 李총재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에서였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표 시절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활용해 정권을 잡았다는 점도 감안했다.

李총재 자신이 신한국당 대표 때 金전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통해 위상을 강화, 대통령 후보가 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도 이를 간파했기에 '수시 개최' 정도에서 타협했다.

이같은 시각차는 앞으로 영수회담 개최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여권에선 "필요하면 영수회담을 여는 게 당연하지만 그 필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선 여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4.24 영수회담의 기본합의는 정치적인 문제들을 여야가 대화를 통해 국회에서 다루기로 한 것" 이라며 "한나라당이 너무 많은 것을 영수회담에 의존하려 해선 안된다" 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3역회의.총무회담 등 실무채널을 최대한 활용, 金대통령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수시 개최' 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은 "여야가 동반자 관계를 잘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면 영수회담을 적절한 때 자주 여는 게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따라서 영수회담을 앞으로 얼마나 더 개최하느냐를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이 상당히 치열할 것 같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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