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보다 가치있는 것은 귀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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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80년대 후반 소설집 『키친』 출간 이후 한국에서 ‘통하는’ 대표적인 일본작가로 자리잡아온 요시모토 바나나(45·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중편소설 『데이지의 인생』(민음사)의 국내 출간에 맞췄다. 소설은 20대 중반의 여주인공 데이지가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의 끔찍한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물 흐르듯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 위태로움이 숨어 있음을 간파한 데이지는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 소녀로 성장한다. 그런 데이지는 선생님을 발로 차고 착각으로 일요일에 학교 가놓고는 월요일을 쉬어버리는 제멋대로 친구 달리아와의 우정에 흠뻑 빠져든다. 결론적인 메시지는 ‘삶과 죽음보다 가치 있는 것은 귀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러니 주변의 죽음을 그리 슬퍼 말라’는 것이다.

소설은 일본에서는 2000년에 출간됐다. 3일 기자간담회에서 바나나는 “오히려 요즘 출간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설 쓸 당시보다 현재 일본의 일자리 사정이나 사회 분위기가 더 나빠졌기 때문에 일종의 상처 치유 효과가 있는 자신의 소설이 요즘 더 제 역할을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특정한 약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듣는 것처럼 내 소설은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의 치유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바나나 소설이 치유력을 발휘하는 방식은 잔혹한 사건, 기분 나쁜 꿈 등 섬뜩한 에피소드들을 통해서다. 바나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깊은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나나는 한국 음식광이기도 하다. 예전에 살던 집주인이 한국인이어서 자연스럽게 한국음식을 접했다고 한다.

한국 방문 사흘 동안 “첫날은 맛있는 음식 먹고, 둘째 날은 언론 인터뷰하고, 돌아가는 셋째 날 역시 맛난 음식을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일 저녁으로 간장게장을 선택했고, 3일에는 삼계탕·숯불갈비 등을 맛본다고 출판사 측이 전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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