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군기지와 지자체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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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용산구청이 관내 미8군측과 미군기지 내 호텔 신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데 이어 대구 남구청은 미군기지 주변 비행안전구역 내 건물 신.증축을 전면 허가하겠다고 나섰다.

용산구의 경우 미군이 신축 중인 호텔이 국내 건축법상 허가 대상인지가 초점이고, 남구는 기지 주변 주민들이 고도제한으로 인해 30여년이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왔다고 한다.

미군기지 안팎의 시설물에 대한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이같은 정책 결정은 주민이익을 반영하는 이해할 만한 조치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미간에 불필요한 감정적 마찰이나 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한 논란으로 비약하는 것 또한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외교통상부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관련 규정을 들어 "주한 미군이 지자체와 협의하거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 고 유권해석을 내리는 자세는 문제를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줘 매우 유감스럽다.

지방정부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중앙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 있는 협정문을 내세워 문제를 덮으려는 자세는 온당치 않다.

외교부는 물론 국방.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가 지자체와 미국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하며, 그 핵심은 역시 SOFA의 관련 규정을 바로잡는 데 있다.

마침 이달 말께 SOFA 개정 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이 문제를 쟁점사항으로 다뤄야 한다. 일본 중앙정부가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놓고 해당 지방정부 및 미국측과 장기간 줄다리기를 해 원만히 합의점을 도출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도 자기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행 협정을 마냥 끌고가서는 결국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국내 미군기지들은 미군측의 비협조로 무등록 차량이 얼마나 되는지, 환경오염 실태는 어떤지도 우리 행정당국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웃 주민에게 피해와 불이익을 주면서 따뜻한 대우를 바랄 수는 없다. 지자체.미군간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중앙정부가 나서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SOFA 개정 협상 때 조목조목 반영하기를 촉구한다.

특히 외교부는 미군기지 관련 사안을 지자체와 미군간의 문제로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 시대와 상황에 맞게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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