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美 독주에 대항할까…견제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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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6월의 미.러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당선자의 속내를 탐색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강한 러시아의 재건과 자존심 회복' 을 외쳐와 클린턴 입장에선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통치술인지 알아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정책 평론가 알렉산드르 골츠의 설명)

푸틴으로선 이번 회담이 그동안 국내적으로 다져왔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을 수 있는 기회다. 내심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제회복 등 국내적 이슈를 자존심 회복이란 외교적 성과로 무마하려는 뜻도 없지 않다.

사실 지난 10여년간의 미.러 정상회담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해왔다. 소련 멸망후 지금까지의 미.러 정상회담은 경제가 주 의제였다.

그러나 내용적으론 러시아가 경제원조(?)를 받는 대가로 미국의 외교.군사적 주도권을 어떤 수준과 속도로 용인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유럽 확대, 유럽연합의 확대, 발트국가들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간의 노르딕동맹 구성문제, 인권을 무기로 지역분쟁 개입을 확대하는 나토와 유엔의 권위저하 등을 둘러싼 미.러의 갈등은 모두 이러한 과정에서 표출된 것들이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때때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미국의 외교적 주도권과 전략을 무너뜨리려 시도하지는 않았다. 러시아나 그에게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게 러시아 국민의 열망이다. 실제로 푸틴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대등하게 가져가기 위해 그동안 외교적 환경을 정비해왔다.

중국.인도와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화하고 유럽과 러시아의 긴밀도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5월 독일에서 열릴 러.독.프랑스 정상회담이나 5월 초로 예정된 러.독 정상회담, 역시 5월초로 예정된 상하이(上海)협정 5개국 정상회담 등은 이러한 푸틴의 의도를 반영하는 행보다.

크렘린 관측통들은 푸틴이 대통령 당선을 전후해 독일과 영국의 지도자들과는 잇따라 만나면서도 미국측과는 최고위급 접촉을 자제하는 모습도 러.미관계를 새로이 가져가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의 이같은 정책엔 한계가 있다. G8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러시아에 대한 지원, 파리클럽과의 외채 재조정, 러시아 경제재건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 등은 결국 서방, 특히 미국의 의중에 달려 있다.지난 10년 동안 러시아의 서방 의존도도 높아졌다.

빈 주머니로 큰소리 치는 푸틴을 미국은 어떻게 다루려 할까. 이번 회담은 그 예고편의 성격이 될 것이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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