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미중우호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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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달 동북아시아 국가 순환방문 일환으로 3박4일의 중국국빈 방문을 하였다. 시간으로 보면 64시간으로 한국(21시간) 일본(23시간)에 비하면 3배 가까운 시간을 긴 시간이었다.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유례없는 취임 첫해 중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21세기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대 아시아 외교정책을 설명하면서 21세기의 과제는 어느 나라도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므로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 유리함을 분명히 하였다. 사실 자신의 성장 배경과 관련 미국의 “초대 亞.太 대통령” 자처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중국의 방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美中양국은 이변이 없는 한 상당기간 G2로서 사이좋게 세계를 리드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102년 전 이맘 때인 1907년 12월 7일 미국의회에서는 중요한 의안이 통과 되었다. 당시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의회에 제출한 것으로 중국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중국을 위해 환원하자는 내용이었다.
1900년 중국에서는 義和團이라는 극우 무술단체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피해를 가하는 등 외국인을 배척하는 난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베이징의 東交民巷의 외교단지를 포위 외교관과 그 가족의 신변을 위협하였다. 당시 중국(淸)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등 서방열강들은 義和團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합군을 조직하였다. 일본도 포함된 8개국 연합군은 天津에 상륙하여 수도 北京으로 진격하였다. 가장 용감하게 전투에 임한 국가는 역시 미국이었다. 당시의 상황이 미국배우 찰톤 헤스톤이 주연하는 “北京의 55일” 이라는 허리우드영화로 소개된바 있다.
미국은 다른 유럽열강과 달리 이 기회에 중국 땅에 처음으로 전투부대를 파견하였다. 건국의 역사도 짧지만 남북 내전을 치룬 미국은 다시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중국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의화단의 난은 8개국연합국에 의해 평정되었다. 당시 실권자 慈禧太后는 도피처 西安에서 돌아오고 중국정부는 참전국에게 배상금 지불하게 되었다. 배상금은 승전국의 요구로 이루어지므로 실제 피해보다 더 많은 금액이 지불되는 것이 관례였다. 장래 미중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실제 피해에 대한 보상후 남은 배상금을 중국에 전부 돌려주기로 했다. 미국정부는 이 돈으로 중국 청소년의 미국유학비용 부담과 함께 北京에는 미국유학을 돕기위한 예비교를 설립하였다. 慈禧太后의 남편이었던 咸豊황제의 淸華園별장을 구입 학교의 캠퍼스를 만들었다. 美中 友好로 탄생한 청화대학은 신중국 건국후 후진타오 국가주석등 수 많은 중국의 지도자를 배출한 최고의 명문대학이 되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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