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김기덕 감독의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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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김기덕(40)감독의 신작 '섬' 을 보고 난 뒤 갖는 첫 느낌은 그가 '진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 편 한 편 작품을 낼 때마다 새 단계로 향상하고 있다.

데뷔작 '악어' (1996년)이후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 등 전작 3편을 역으로 따

라가보면 그의 영화가 '김기덕 식' 이라는 개성은 더 분명해지고 형식도 세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데뷔작이 출세작이 되고 사라져버리거나, 작품 수가 늘수록 자신의 색(色)을 잃어가는 여느 젊은 감독과는 다른 궤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김감독의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다. 그의 영화는 '재미있다, 없다' 라는 상식적인 기준을 선뜻 들이대기가 힘들다.

스토리가 드라마적인 흥미를 갖는 것도 아니고 눈을 즐겁게할만큼 화면이 화려하거나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시각적인 즐거움보다는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집요하게 들이대고 걸쭉한 이야기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쫓아가는 데 열중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파리에서 7년간 미술수업을 했다는 그는 카메라를 든 화가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붓질은 거칠고 그로테스크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섬' 이라는 제목에서 언뜻 떠올리게 되는 정현종의 단시(短詩)에서 섬은 소통의 열망이 내려 앉는 곳이다.

단절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상륙해서, 서로를 보담아 보도록 자극하는 장소. 김감독에게 있어서의 '섬' 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말을 빌면 "섬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며 인간을 화해로 이끄는 곳" 이다.

하지만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서정시(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편안하지 않다. 추한 욕망의 끝까지 가서 그것들은 다 털어 내고서야 도달하게 되는 처절한 과정이다.

외진 낚시터에서 밥과 미끼를 팔고 몸까지 '팔면서' 살아가는 젊은 여자 희진(서 정). 신산한 과거가 있을 것 같은 그녀는 세상과 인간을 혐오하는 표정으로 낚시꾼들을 상대한다.

어느 날 전직 경찰관인 현식(김유석)이 낚시터를 찾는다. 그는 바람을 피운 애인을 총으로 살해하고 피신해 온 뒤 자살을 꾀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희진은 그에게 연정을 품는다.

한편 검문 나온 경찰을 본 현식은 낚시 바늘을 입에 넣고 자살을 시도하고 이를 본 희진은 경찰을 따돌리고 그를 살려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지만 둘의 애정은 그들을 둘러싼 상황으로 인해 더욱 극한적으로 된다.

낚시터라는 한정된 공간임에도 수중 촬영등으로 다양한 곳에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했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적은 점을 군더더기 없고 리듬감있는 편집으로 상쇄한 것도 돋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좌대를 들이닥치는 장면, 시계가 물에 빠지도록 좌대에 풀어놓는 장면 등 몇몇 곳에서는 호흡이 급하고 연출이 어색해 아마추어적인 서투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감독의 영화적 성숙은 이런 약점들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22일 개봉.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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