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체제, 화폐개혁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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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이 충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2~3개월치의 생활비 수준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몰수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로써 북한 전 지역의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 계층과 장마당에서 하루살이로 살아온 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때문에 혼란스럽고 불만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가배급체계가 사실상 와해되고 대다수 주민들이 시장에 의지해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를 감수하고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은 체제 보위가 가장 큰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확산됨에 따라 자산 보유 계층이 늘어났고 그 결과로 체제 이완 현상이 불거지자 취한 극약처방인 셈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화폐개혁을 통해 북한 당국이 의도한 바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역사적 교훈도 그렇다.

북한은 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함께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다. 사회주의의 낮은 생산성에다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이 차단되면서 북한이 외부로부터 자원과 자본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북한이 경제를 회복하려면 체제 개혁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고 국제관계를 개선하는 길 이외에 달리 방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겠다며 핵개발을 추진하고 국제사회와 대립을 심화시키는 정반대의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곤 이미 한계가 드러난 ‘자력 갱생’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가 고질적인 생필품 부족, 암시장의 확대와 극심한 인플레, 빈부격차 확대, 체제 이완 등인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화폐개혁을 통해 해결한 나라는 역사적으로 전무하다. 화폐개혁은 이런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물이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이 해야 할 선택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벗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체제를 개혁하는 길뿐이다. 핵놀음으로 평화를 위협하고 스스로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한심스러운 행동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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