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세종시의 ‘위험한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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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충남도지사는 “충청인의 영혼과 자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충청도민들은 정말 ‘영혼과 자존심’ 때문에 ‘수정 불가’를 외치는가. 그래서 충청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가적 비효율과 수십조원의 낭비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얘기인가. 세종시 건설비용의 대부분은 충청지역이 아닌 나머지 지역의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나온다. 충청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역민들의 혈세를 쓴다는 게 오히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충청인들이 그 정도로 무모하고 철면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른바 충청권의 여론은 여전히 막무가내로 ‘원안 고수’가 대세인 것 같으니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경제성이고 자족기능이고 다 필요 없으니 행정부처만 옮겨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그 지역정서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나라의 독립이나 민주화 같은 중차대한 시대적 과업이라면 모르겠으되 구체적인 이해가 걸린 사안에 지역정서나 자존심 같은 추상적인 가치가 진정한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도시 건설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거론되는 추상적인 논란은 실은 겉치레일 뿐이고 그 이면에는 구체적인 이해타산이 깔려 있기 십상이다. 세종시 문제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안 고수’의 진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계산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으로 세종시를 더 나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충청인들의 극히 합리적인 계산이다.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의도는 뻔하다. 지역정서를 앞세워 차기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이유라면 세종시가 자족기능을 갖든 말든, 국민 세금의 낭비나 행정 비효율이 얼마나 크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니 ‘원칙’이니 ‘약속’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공허한 말로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사정을 이해할 만하다.

정치인들의 주장을 제쳐놓는다면, 충청인들이 ‘원안 고수’를 고집하는 진짜 의도는 정부로부터 최대한 많은 대가를 얻어내려는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 만일 충청인들이 ‘수정 반대’를 외치는 이유가 더 나은 세종시에 대한 염원의 발로라면 외견상 다소 거친 반발도 그런 대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표심을 노린 정략적 의도에서든, 진정한 지역 발전을 위한 전략적 의도에서든 세종시 갈등을 지나치게 길고 과격하게 몰고 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든 전향적으로 풀어보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지를 너무 조이면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려는 의도는 이를 반대하는 야당이나 충청인들보다 훨씬 순수한 진정성이 담겨 있다. 국가적인 비효율을 막고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보강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까지 하고 설득하는데도 끝까지 반대한다면 세종시 계획의 수정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모든 성의를 들여 설득해도 안 되면 도리가 없다”고 한 것이나, 정운찬 총리가 “정부 부처가 다 갈 수도, 한 곳도 안 갈 수 있다”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야당과 충청인들은 지금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