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뽑아야"…산불·구제역 주민들 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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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화마(火魔)가 덮친 강원 영동지역과 구제역 파문에 시달려온 경기도 포천.충남 홍성지역 주민들은 '대재앙' 의 충격을 잠시 뒤로 하고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들은 "살아갈 일이 막막한데 투표할 정신이 있느냐" 며 투표하지 않았다. 선관위 직원들은 승합차 등을 동원해 유권자들을 실어 나르는 등 투표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쏟았다.

○…산불로 집을 잃은 강원도 동해시 북삼동 분토골 주민들은 엄청난 상심 속에서도 투표를 하는 의연함을 보였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이 마을 유권자 10여명 중 김영호(金永浩.62)씨가 잿더미에서 건진 자전거를 타고 동해시 북삼동 북삼초교 투표소를 찾은 것을 비롯, 주민 5명이 낮 12시 이전에 투표를 마쳤다. 金씨는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 산불방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투표했다" 고 말했다.

○…강원도 삼척시 산불의 발화지이자 최대 피해지역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와 매원리 주민들은 이날 궁촌리 궁촌초교에서 투표를 했다.

주민들은 투표에 앞서 산불로 숨진 李상하(64)씨의 노제를 지낸 뒤 서로를 위로했다. 지난 11일 23평짜리 횟집을 잃은 근덕면 이광순(李光順.57)씨는 "'밤잠을 설치며 청소하느라 '파김치가 됐지만 투표는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해 한표를 행사했다" 고 말했다. 李씨는 자신의 6인승 지프에 투표를 포기하려는 주민들을 설득, 실어날랐다.

한편 삼척지역 산불피해 읍.면 지역의 투표율은 시 전체투표율을 웃도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산불피해 지역인 원덕읍.근덕면.미로면의 경우 각각 63.5%, 64.7%, 59.9%로 시 전체투표율(59.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관계자는 "읍.면 지역의 경우 전통적으로 도심지에 비해 투표율이 높은데다 선관위와 시청에서 승합차 등으로 유권자들을 실어나르며 투표를 권한 것이 효과를 본 것같다" 고 평가했다.

○…지난 7, 10일 대형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죽왕면 삼포리와 거진읍 거진리에서도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삼포2리 송총훈 이장은 "귀중한 한표가 아픔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해발 1천7백8m 설악산 대청봉 중청대피소에 근무하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 5명도 투표를 마쳤다.

○…구제역으로 발이 꽁꽁 묶였던 주민들도 한표를 행사했다. 지난달 26일 이후 19일째 마을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구제역 최초 발생지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1리 50가구 주민들은 이날 마을밖 면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17일째 인근 도축장으로 출근하지 못한 회사원 이덕업(李德業.46.여)씨는 "가족의 우울한 사정을 떠나서 지역 일꾼을 뽑는데 동참키로 했다" 고 말했다. 자식같은 젖소 28마리를 도살하는 아픔을 겪은 이근창(李根昶.52)씨도 주권을 행사했다.

충남도내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홍성군 장양리와 내현리 주민들, 갈산면 오두리와 보령시 주산면 주민들도 출입통제 초소와 투표소 출입문에서 두차례 신발을 소독한 뒤 투표했다.

총선 기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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