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어려운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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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투표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적어도 5공 때까지는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해 보였고 선택은 간단했다.

그러나 민주화과정에 들어서면서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여럿으로 갈라지거나 흐릿해지고 그에 따라 투표하는 일도 간단치 않게 됐다.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상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성적 판단 자체가 단순하지 않을 때 원초적 정서는 쉽게 다가선다.

투표장에 가는 마음가짐도 전과 달리 심드렁해졌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자못 결연하고 경건하기까지 했던 그 심정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이번 선거처럼 후보자들의 신상정보가 발가벗겨지면서 꼭 투표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 대표자를 통한 의회민주주의제도는 직접민주주의가 꼭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뛰어난 사람들이 대표자가 돼 정치를 맡아야 한다는 관념이 그 밑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이런 전제가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한다.

국회의원들이 반드시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후보자들의 탈세, 병역기피 의혹, 전과기록 등의 전력을 보면 도덕적 기준에서는 도리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기권이라는 선택이 능사는 되지 못한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수요자인 유권자보다 공급자인 정치인 위주여서 투표율이나 득표율이 아무리 낮아도 당선자는 나오게 돼 있다.

때문에 정치는 나몰라라 하는 작심을 하지 않는 이상 덜 싫고 덜 나쁜 후보를 고를 수밖에 없다.

가령 투표율이나 득표율이 50%를 넘어야 당선된다는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정치인들이 이런 제도를 스스로 만들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정치상황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투표해야 하는 것인가.

후보 개개인의 이른바 인물 위주로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소속정당 또는 정책을 보고 선택할 것인가.

두 가지 기준이 일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후보자 인물평가가 전에 없이 두드러진 점에 특색이 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었는데, 선거전이 인물대결 양상을 띠는 것은 상당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정당의 후보자 공천이 제 멋대로 이뤄지는 악폐에 경종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의 정당들은 본질적으로 지역정당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정당 위주의 선택은 지역주의 강화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다른 시각의 평가도 나름대로 근거를 지닌다.

여론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당민주화가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면 국회의원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당 우두머리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럴 뿐더러 이번 선거의 의미의 하나가 안정세력을 주느냐, 아니면 견제세력을 키우느냐에 있다는 시각에서 보면 인물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탈세혐의 등 저질후보를 가려내자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하에서 중간선거는 집권당에 어려운 선거다.

중간선거는 무엇보다 집권당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띠게 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평가란 비판적이게 마련이다.

이 점에서 여당이 스스로의 업적을 자랑하면서도 중간평가보다 인물 위주의 선거로 몰고가려는 의도를 헤아려볼 수 있다.

인물 위주의 선거가 된다면 여당으로서는 중간선거에서 오는 불리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지역정당들이 각축하는 현실 앞에서 유권자들은 이를 뛰어넘는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 힘든 요구에 과연 어떤 대응이 나타날 것인가.

<한양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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