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삼포리 주민 신기룡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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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

1996년 강원도 고성군 산림을 휩쓴 해방 이후 최대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신기룡(愼基龍.44.여.고성군 죽왕면 삼포2리)씨는 또다시 찾아온 화마(火魔)에 몸서리쳤다.

이날 오전 2시 "빨리 대피하라" 는 다급한 마을방송을 들은 愼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밖에 나와보니 인근 학야리 야산쪽에서 불덩어리가 거센 바람을 타고 우리 마을쪽으로 다가오고 불똥이 공중을 휙휙 날아다니는 거예요. 4년 전 그랬던 것처럼 속옷가지와 식구들이 먹을 쌀만 간신히 챙긴 뒤 봉고를 타고 국도변으로 무작정 피신했어요. "

불길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오전 6시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 겉모습은 멀쩡한데 방안에는 잿더미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지난번 산불로 전소돼 적벽돌로 새로 지은 집이어서 그나마 타지 않고 버텼던 것. 4년 전 집과 창고가 모두 불탄 뒤 4개월여동안 집터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서 생활했던 愼씨는 앞으로 이재민들이 겪어야 할 난민같은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산불피해를 본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재기하도록 하는데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따뜻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愼씨는 "애써 가꾼 재산을 두번이나 송두리째 빼앗아 간 산불이 지긋지긋하다" 며 잿더미로 변한 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성〓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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