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육류 시식회'의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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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소비자들은 아직도 구제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연 '우리 육류 시식회' 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구제역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초 주최측은 구제역에 대한 일반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파주산 육류 시식회' 를 열기로 했으나 파주산 육류가 반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지역의 고기를 가져다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차관과 국회의원.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상당수 참석자가 파주산 고기로 알고 먹기를 꺼려하다 "이 고기는 파주산이 아니라 한냉에서 사온 것이니 안심하라" 는 주최측 설명을 듣고서야 고기를 먹었다는 것이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모든 축산 농가가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이런 정도라면 일반 국민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부와 관련 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인 교육과 소비 홍보가 절실한 때다.

방역 못지 않게 시급한 것이 소비 위축을 막는 일이다. 구제역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에 육류를 먹지 않는 사태를 방치하면 구제역 감염 지역뿐 아니라 전체 축산 농가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구제역에 걸린 고기를 먹더라도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연구 결과로 밝혀져 있다.

특히 구제역 바이러스는 열에 약해 익혀 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감염 지역 가축의 반출을 막고 육류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소비자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가축의 전염을 막기 위한 조처다.

경기도 파주에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은 의사구제역 지역이 늘어나면서 일반의 육류 소비 심리까지 크게 위축하는 등 축산 농가뿐 아니라 유통단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육류의 수출길이 막힌데다 축협 중앙회의 매출이 40% 이상 감소하고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 처지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3년 전 막대한 피해를 보았던 대만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게 됐다.

구제역 파동의 고비는 감염 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느냐의 여부와 소에 비해 구제역에 훨씬 약하고 전염성이 높은 돼지까지 감염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당국과 축산농가는 원인 규명과 방역대책에 만전을 기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과 약품 부족으로 방역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고 축산 농민이 감염 지역에서 가축을 밀반출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자칫하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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