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정부대응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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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66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구제역(口蹄疫)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종합적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발병경로에 대한 원인규명도 아직 안되고 체계적인 방역체계도 갖춰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초기 은폐의혹.대응미숙〓농림부는 경기도 파주의 젖소들에서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괴질이 발생한 직후 지난달 27일 구제역에 대한 언급없이 "수포성 질환이 발생했다" 고만 짤막하게 발표했다.

농림부는 또 발병 가축들의 가검물을 영국 퍼브라이트연구소에 의뢰한 뒤 당초에는 1주일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돌연 5일 뒤인 지난 2일 국내 조사결과 구제역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발생초기부터 구제역 발생사실을 숨기려했다는 의혹과 함께 구제역 확인 발표시기를 조절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했던 경기도 파주의 권선목장 주인 金모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10시쯤 "가축들이 이상하다" 며 파주시에 신고했지만 검역당국은 당일 업무가 끝났다는 이유로 하루 뒤인 25일 오전 10시에야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초기 대응이 적절치 못했던 것. 충남 홍성의 경우도 당국이 전국의 농가에 대해 구제역 의심증세가 발견되면 신고해줄 것을 알렸지만 농민들이 자가치료를 하면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발견이 늦어졌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발병경로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황사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가 해외여행객.야생동물에 의한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정확한 경로에 대한 기초조사도 이뤄지지않은 상태다.

농림부는 일단 영국 연구소 위탁 검사를 통해 각 국의 구제역 바이러스와 비교해 출처를 밝힐 예정이나 정확한 감염경로를 밝혀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예방검역 체계도 재점검 시급〓1997년 대만 구제역 발생 이후 해외여행객.수입축산물 등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느슨한 검역이 이뤄졌다는 목소리도 높다.

수입 건초사료에 대한 부실한 검역체계도 문제다.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건초사료는 단순 소독만하고 바이러스 검사없이 그대로 국내로 유입되고 있어 구제역 등이 묻어들어올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게다가 중국 등지의 구제역 발생국가를 여행하고 돌아온 여행객에 대해서도 발판소독 등만 실시하는 등 반입품 등에 대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외여행객에 대한 검역을 강화할 경우 규제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다 수입산 건초에 대해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할 경우 비용부담이 늘어 농가가 기피한다" 고 애로를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종합적인 방역체계를 재구성해 제2의 구제역 파동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손발 안맞는 행정체계〓감염조사와 방역 작업에 나선 각 기관들 사이에 제대로 손발이 맞지 않아 제때 방역 지원을 받지 못한 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의사 구제역 증세가 발견된 홍성군 장양리의 경우 3일 오전까지 홍성군청측은 줄곧 "발생지로부터 반경 3㎞이내에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추가 감염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육우에 대해 혈청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고 밝혔다.

하지만 검역당국은 현장에서 육안검사만을 실시한 뒤 의심할 만한 증상을 보이는 가축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혈청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인접지역 등에서도 인력 부족과 배포 시스템 미비로 주민들이 방역 약품을 제때 구하지 못해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홍병기.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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