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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교육, 학교가 맡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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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국어고의 존립에 대한 논의가 사교육의 폐해를 줄인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사교육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허망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수능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아랍어 시험이다. 2005학년도 수능부터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서 아랍어 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첫해 수험생 500여 명이 응시했던 아랍어 과목을 2010학년도에는 5만6000여 명이 선택했다. 제2외국어 총 응시생의 43%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치고 응시생수 1위를 기록했다. 전체 수험생 67만 명의 9%에 달하는 숫자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현상이 있다. 정규과정에 아랍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대한민국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아랍어를 전공하고 중등과정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5만6000명의 수험생 중에는 학교에서 아랍어를 전혀 교육받지 않은 학생이 거의 100%다. 공교육에서 아랍어를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대신해 사교육이 아랍어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공교육에 엄격한 규정과 절차가 있는 것은 지당하다. 아랍어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수능을 처음 실시한 이후 지난 6년간 아랍어 수험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공교육이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 사교육이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물론 공교육이 유행이나 시류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 100년 대계로서 중심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행에 영합해 조변석개하는 교육정책도 안 된다. 하지만 백년대계의 의미가 백 년을 기다리고 살펴 본 후에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교육이 아랍어 교육을 전적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 죄일까?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학생들은 아랍어 교육을 원하고 있는데, 제도권 안 공교육의 중심인 고등학교 중 단 한 곳에서도 아랍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모가 자신의 소비를 줄이고, 자식에게 쓰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지나친 것을 손 놓고 두고 볼 수만도 없다. 공교육의 부족함을 사교육에서 채워주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공교육의 틀 안에서 학생들의 요구와 수요를 채워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사교육에 내버려두지 말고 공교육으로 흡수해야 한다. 아랍어 교육 등을 사교육에 빼앗기고 난 후에 어떤 명분을 세워 단속을 하거나 제한을 가하는 뒤늦은 우를 범하지 말자. 더 늦기 전에 공교육에서 아랍어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이영태 한국외대 교수·아랍어통번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