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미국이 주는 역설적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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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월 아이오와주 대선 예비선거 때 이곳 공영TV인 C-SPAN에서는 현지의 공화.민주당의 선거현황을 직접 중계했다.마침 워싱턴에 폭설이 내려 오도가도 못하던 때여서 집에 갇혀 4시간에 걸친 중계를 볼 수 있었다.

농민이 주로 사는 아이오와주 한적한 한 마을의 코커스(당원대회)를 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원대회라 하면 당 간부가 연설하고 "누구를 뽑는데 이의 없습니까" 하면 만장일치로 박수치고, 그 대가로 저녁먹고 술 추렴하는 것이 보통 우리 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시골의 당원대회조차 어느 국회 못지 않은 토론과 질서가 있었다.

동네주민(당원)들이 자기가 속한 당의 대회장으로 가 등록한 뒤 절차에 따라 후보를 놓고 토론을 한다.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오고 그 후보에 대한 질문도 나온다.손을 들거나 후보이름을 쓰는 방식으로 투표한 후 결과를 집계소에 전화로 보고한다.당비 모금도 하는데 교회에서 연보궤를 돌리듯 모자를 돌려 자유롭게 모금한다.

돈을 받고 당원대회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참여하는 것이다. 주민이 발의하는 각종 제안이 토론을 거쳐 채택되며 이는 주 당대회를 거쳐 전국 전당대회로 보내진다.

이런 대회가 민주.공화당 별로 아이오와주 2천1백곳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진다.그 집계가 예비선거 결과다.

미국에서 선거운동은 이미 과학화 단계에 들어갔다.선거운동은 유권자에게 언제.무슨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보내서 설득하느냐에 맞춰 과학적 통계와 분석에 기초해 집행한다.

예를 들면 TV홍보는 1천 GRP(Gross Ratings Point)정도면 충분한데 1GRP란 1%의 가구가 시청하는 단위로 1천 GRP이면 한 후보에 대해 각 집에서 적어도 10번 정도의 홍보물을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GRP당 광고단가로 계산할 때 중간규모의 주 상원의원 후보의 경우 선거비용은 2백50만달러 정도면 족하다는 통계가 제시된다.

하원의원 선거에도 선거운동팀이 전문가들로 구성된다.선거모금.여론조사.언론대책.TV광고.시민단체 담당 전문가들이 한팀이 돼 유권자 동향을 분석하고 처방을 낸다.그 접근은 철저히 통계적.과학적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선거는 후보선정에서부터 선거운동까지 당 보스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당조직에 의해 많이 좌우됐다.

매수.매관.매직.협박 등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 해 점잖은 사람들은 정치를 피해갔다.당 보스 위주 정당제도로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자각으로 1901년 최초로 예비선거제도가 플로리다주에서 도입됐다.

이 제도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도입된 것은 50년대이고 요즘과 같은 대중참여적인 예비선거는 70년대 와서야 정착됐으니 7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앞의 예처럼 수준높은 코커스의 진행도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2백몇십년 전 독립전쟁 당시부터 마을마다 모든 주민의 참여와 토론으로 중요 사안을 결정한 타운미팅의 전통과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선거운동에 대한 한탄의 소리가 높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는 없다.국민의 전체 수준도 높아지고 좋은 지도자도 나와야 한다.

우리 50여년의 선거역사를 볼 때 집권자나 정치인들이란 언제든지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이기려고만 했다.그 결과가 지금의 선거풍토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할 때 4.19혁명이 났고, 86년 군사정권에 대항한 6월항쟁이 일어났다.지역감정 얘기를 갑자기 많이 하지만 어쨌든 그 덕에 정권교체도 했다.

우리의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로 볼 때 이 정도의 선거라도 하는 것이 다행이 아닐까. 이 결론이 미국으로부터 얻는 역설적 희망이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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