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핵심 뺀 해양부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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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1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

▶김대중 대통령〓중국과의 어업협정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이항규(李恒圭)해양수산부장관〓중앙일보에 우리 정부가 중국의 국내법을 모르고 어업협정에 가서명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가조인한 후 중국이 만든 법으로서 그 후에 통보받아 계속 협상 중입니다.

▶金대통령〓한.중 어업협상은 언제 타결되는가.

▶李장관〓조속히 타결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무회의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야당이 제기한 국부유출.국가 빚 논란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는 金대통령의 질책때문. "두 사람의 대화를 다른 장관들이 긴장하면서 들었다" 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李장관의 보고는 실무관계자들이 주장하는 '중국의 약속위반' 을 반복한 것. 우리측은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李장관은 간략한 보고를 한 탓인지 쟁점의 핵심대목을 빼놓았다. 쟁점의 핵심은 1998년 11월 어업협정 각서 가서명 때 우리측이 '주의 의무' 를 제대로 다했느냐는 문제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중국측이 99년 3월 자기네 법령을 바꿔 양쯔(揚子)강 하구에서 우리 어선의 조업금지법을 새로 만든 것은 외교적 무례" 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측은 "전에도 이런 규제를 담은 법령이 있어 법령을 정비했고, 한국측에 유리하게 규제를 푼 것" 이라고 반박한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중국측과의 구두(口頭)합의 내용. 중국 대표로부터 "한국에 불리한 법령은 수용할 수 없다" 는 합의를 받았다는 것. 이 대목을 놓고 기자들이 물었다. "우리 어민들의 생명선과 황금어장을 내줘야 할지 모를 사안을 문서가 아닌 입으로 합의해도 되느냐" 고 하자, 실무자들은 "구두합의도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측은 아예 구두합의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해명이 '구차한 변명' '우리만의 항변(抗辯)' 이 되는 실정이다.

한.일 신어업협정 때도 '꼼꼼하지 못했다' 는 국민적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 중국과의 협정에서도 그런 자세를 취한 것이다. 우리 어업외교의 현주소다.

김영구(金榮球.한국해양대)교수는 "끊임없이 법을 정비하는 중국과 법의 범위.시기를 정하지 않고 구두.포괄적으로 합의한 것은 명백한 외교적 실수" 라고 지적했다.

이철희 기자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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