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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양강도 대규모 폭발] 한밤중에 웬 대규모 발파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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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밤과 9일 새벽 북한 양강도 김형직군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13일 서울 지하철 승객이 출근길에 북한 내 폭발사고를 보도한 신문을 보고 있다. [AP=연합]

김형직군에서 감지된 대규모 폭발 징후와 관련, 북한은 13일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계획적인 발파 작업"이라고 진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폭발이 이뤄진 시간이나 현지 사정을 감안할 때 북측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정황 때문에 정부도 한.미 대북 정보망을 총가동해 북한 측 주장을 검증하고 있다.

◆ 심야에 폭파 작업 벌인 속사정은=당초 정보 당국이 파악한 폭발 시점은 8일 밤 늦게부터 9일 새벽 사이 두 차례로 알려져 있다. 백남순 북한 외무상의 말대로 "계획에 따라 진행된 발파"라면 엄청난 규모의 폭발 충격이 있을 작업을 심야에 강행한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전력난 등을 감안할 때 상당한 수준의 조명시설이 필요한 깊은 밤에 공사를 벌일 상황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상 발파 규모를 벗어날 경우 위험부담이 따르는 작업을 굳이 밤에 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수공장의 폭발 사고 등을 은폐하려 평화적 건설공사 중 발생한 사고로 외부에 거짓으로 알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온다.

◆ 다이너마이트로 가능한가=북한이 발전용 토목공사를 위해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로는 이번 같은 폭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북한 특유의 공법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른바 '100만산(100만t 규모를 말함) 발파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식의 보도를 종종 내보낸다. 발파 전문가인 지질자원연구소 유창하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과거 몇 차례에 걸쳐 이런 형태의 폭파 작업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인하대 심명필(토목공학과) 교수는 "댐 건설을 위해 이번처럼 산 하나를 통째로 파괴할 정도의 발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로 변경공사라 해도 산을 없앨 필요는 없으며 이런 규모의 공법은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대림산업 기술연구소 구석근 소장도 "댐 건설을 위해서는 튼튼한 지반이 필수적인데 그런 곳에서 대규모 폭파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현지 사정에서 가능한가=북한은 최근 양강도 북부의 북.중 국경지역에서 압록강이나 그 지류를 활용한 수력발전 공사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정부 당국자들이 말했다. 그렇지만 폭발의 진원지인 김형직군 일대에는 이런 대형 폭발을 일으켜야 할 대규모 댐 건설이나 발전시설이 없는 것으로 우리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그런 계획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소의 고덕구 수석연구원은 "현재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 지점은 압록강 지류인 후창강 유역으로 보이며, 후창강은 약 300㎢의 유역 면적을 가진 소규모 강"이라고 밝혔다.

김형직군 월탄리에 살았다는 탈북자 이충국씨는 "월탄강은 폭 3~4m의 하천이 고작인데 무슨 발전소를 지으려 발파 작업을 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왜 9월 9일인가=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북한의 정권수립 56주년 기념일인 이른바 9.9절이다. 특히 이날은 북한 주민들의 휴일이다. 북한이 무리한 작업을 왜 벌였을까 하는 데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9.9절에 맞춰 북한체제를 과시할 수 있는 시설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려다 폭발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저리에 있는 노동미사일을 이동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어보려는 모종의 외교.군사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해 정권수립 55주년에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노동미사일을 선보이려다 취소한 적이 있다. 당시 광장에서 11km 떨어진 미림비행장에 미사일과 자주포.군용트럭 등 150점의 군사장비를 늘어놓은 것을 미 첩보위성이 포착했으나 결국 공개하지 않았다.

◆ 한.미 당국의 판단 근거는=폭발이 감지된 직후인 9일 오전부터 첩보위성과 인적 정보망까지 가동해 관련 정보 수집을 해왔다. 이를 기초로 정부는 12일 언론에 폭발 사실을 비공식 확인해줬고 수㎞의 버섯구름과 리히터 규모 2.6의 지진파까지 정황근거로 제시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 당국자까지 "핵 실험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관심을 보였다. 첩보위성과 고정밀 감청장비 등으로 북한 전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한.미 당국이 발전소 건설을 위한 단순 폭파와 대규모 폭발 사태를 구분하지 못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혜경.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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