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편견 넘어 쌓이는 우정 그린 '플로리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인간은 누구나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쓴다. 그것이 평소 자신이 그렸던 인생과 동떨어지면 자존심에 상처받는다. 그러면 세상을 향한 분노도 커진다. 여기서 움츠러들면 고립되고 그 인생은 실패로 끝난다.

'타임 투 킬' '8㎜' 의 조엘 슈마허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플로리스 (Flawless)' 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서로 상처받은 가슴을 비비며 인생의 의미를 깨쳐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택시드라이버' '미션' 등으로 선 굵고 냉혹한 이미지를 굳힌 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 속에서 심장발작으로 반신불수가 된 후 보이는 부드러운 연기 변신이 좋다. 고통스런 내면을 언어가 아닌 얼굴 표정만으로 풀어내는 연기가 실감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부기 나이트' 에서 열연했던 필립 세이머 호프먼의 동성애자 연기에 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둘이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드 니로의 연기가 호프먼에 가려지는 듯하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사설 경비원을 지낸 왈트(드 니로)는 인질 14명을 구출하기도 했던 보수주의자. 완고하기 짝이 없는 '마초' 인 그의 눈에 아래 위층에 사는 게이들은 인간쓰레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도난당한 마약대금을 찾아 어느 아파트에 침입한 무장강도의 총격에 잠을 깬 왈트는 잠재돼 있던 직업의식이 발동해 강도를 쫓다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다.

드 니로에게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 순간 드 니로의 입장이 돼 영화에 빨려든다.

저렇게 되면 어쩌나…. 드 니로도 그 고민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언어장애를 일으킨 그는 친구들까지 피하는 우울증을 보인다. 그 때 아래층에 사는 게이 러스티(필립 세이머 호프먼)가 노래로 언어장애를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이때부터 왈트와 러스티의 우정을 큰 축으로 갱단의 암투가 곁가지로 펼쳐진다.

사이드 스토리로 적절히 서스펜스를 유지하며 잔잔하게 펼쳐지는 두 남자의 우정, 그리고 그 우정으로 서로의 인생을 살찌워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결코 없다' 는 이야기이지만 러스티의 영화 속 대사는 완벽에 가깝다.

"난 남자 몸에 갇힌 여자일 뿐이야. 다른 여자들과 약간 다를 뿐이야." "똑바로 보라고!영웅시대는 끝났어. 난 여자를 꿈꾸는 남자지만 넌 남자인 척 하는 계집이야."

25일 개봉.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