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쓴다. 그것이 평소 자신이 그렸던 인생과 동떨어지면 자존심에 상처받는다. 그러면 세상을 향한 분노도 커진다. 여기서 움츠러들면 고립되고 그 인생은 실패로 끝난다.
'타임 투 킬' '8㎜' 의 조엘 슈마허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플로리스 (Flawless)' 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이 서로 상처받은 가슴을 비비며 인생의 의미를 깨쳐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택시드라이버' '미션' 등으로 선 굵고 냉혹한 이미지를 굳힌 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 속에서 심장발작으로 반신불수가 된 후 보이는 부드러운 연기 변신이 좋다. 고통스런 내면을 언어가 아닌 얼굴 표정만으로 풀어내는 연기가 실감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부기 나이트' 에서 열연했던 필립 세이머 호프먼의 동성애자 연기에 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둘이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드 니로의 연기가 호프먼에 가려지는 듯하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사설 경비원을 지낸 왈트(드 니로)는 인질 14명을 구출하기도 했던 보수주의자. 완고하기 짝이 없는 '마초' 인 그의 눈에 아래 위층에 사는 게이들은 인간쓰레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도난당한 마약대금을 찾아 어느 아파트에 침입한 무장강도의 총격에 잠을 깬 왈트는 잠재돼 있던 직업의식이 발동해 강도를 쫓다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다.
드 니로에게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 순간 드 니로의 입장이 돼 영화에 빨려든다.
저렇게 되면 어쩌나…. 드 니로도 그 고민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언어장애를 일으킨 그는 친구들까지 피하는 우울증을 보인다. 그 때 아래층에 사는 게이 러스티(필립 세이머 호프먼)가 노래로 언어장애를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이때부터 왈트와 러스티의 우정을 큰 축으로 갱단의 암투가 곁가지로 펼쳐진다.
사이드 스토리로 적절히 서스펜스를 유지하며 잔잔하게 펼쳐지는 두 남자의 우정, 그리고 그 우정으로 서로의 인생을 살찌워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결코 없다' 는 이야기이지만 러스티의 영화 속 대사는 완벽에 가깝다.
"난 남자 몸에 갇힌 여자일 뿐이야. 다른 여자들과 약간 다를 뿐이야." "똑바로 보라고!영웅시대는 끝났어. 난 여자를 꿈꾸는 남자지만 넌 남자인 척 하는 계집이야."
25일 개봉.
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