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앞 제석에는 과일과 과자가 올망졸망 놓였다. 검은 코트를 여민 청년이 두 번 절하고 잔에 소주를 따랐다.
“할머니 덕에 편안히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할머니처럼 베풀며 살겠습니다.”
1976년 세상을 떠난 이 여사는 33년째 서울대 장학생들의 제사주를 받고 있다. 이 여사가 전 재산 300만원을 서울대에 내놓은 것은 73년. 혼자 살던 서울 충현동 2층 양옥을 팔아 마련한 돈이었다. 같은 해 집 전세를 뺀 돈 150만원, 장례비로 준비해 놓았던 100만원까지 추가로 기부했다. “유능한 인재를 키워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560만원은 서울대 전체 장학기금(5470만원)의 10%가 넘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이 여사는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규영 선생의 맏딸이다. 남편 유진희 선생 역시 독립운동으로 일제 시대에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 여사는 48년 남편과 사별한 뒤 바느질과 세탁일 등으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경 여사의 제사를 지내는 중에 추도문을 읽는 복지과 직원들.
서울대는 77년 이후 ‘이원경 장학기금’을 조성해 매년 2~3명의 학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급해 왔다. 그리고 매년 기일을 맞아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과 함께 추모제를 지내온 것이다. 2001년엔 복지과 직원들이 의견을 내 비석을 교체하고 상돌을 설치하는 등 무덤을 새로 단장하기도 했다. 올해 1학기에 이원경 장학금으로 등록금 350여만원을 지원받은 최씨는 “장학금을 받으며 이 여사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구영 학생부처장은 “앞으로도 후손이 없는 기부자들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미진 기자